[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용감한 엄마들 2



이 지면에 제주의 미혼모 공동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가장 필요한 게 엄마들의 치아 치료라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치과의사인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해봤다. 베트남으로 이민을 간 동생이 틈틈이 진료 봉사하는 이야기를 SNS에 두어 번 올린 적이 있던 터다. 동생은 아는 사람에게 말해보겠다, 의사들 커뮤니티에 올려보겠다, 하고는 제주치과의사협회에 연락해보라며 번호를 주었다. 그런 전화를 거는 일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한참을 벼르고,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심호흡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핑계로 미룬다. 몇 번을 그러다 보면 저만치 밀쳐져 희미해진다. 그러다 무슨 일을 계기로 다시 떠오른다. 또 벼른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을 보낸 뒤 드디어 전화를 해서 더듬더듬 사정을 전했다. 아가씨가 상냥하고 따뜻하게 응대해줘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던지!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임원회의에 올려보고 연락하겠다는 대답에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답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왔다. 그녀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열심히 하고는, 사정을 설명했다. 듣고 보니 치과 진료 봉사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싸들고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그런다고 병원으로 부르면,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일종의 호객 행위인 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단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랑의 열매라든지 주민센터의 복지 프로그램이라든지 하는 다른 경로를 이용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확인하느라 답이 늦었다고, 긴 설명 끝에 그녀는 또 사과했다. 사과는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을 만큼 그 목소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자, 그럼 이제 뭘 한다? 사랑의 열매, 거기다 전화를 해? 다시 심호흡을 시작해야 하나 싶은데, 아무래도 열의는 전 같지 않다. 봉사할 곳을 정하고, 방법을 세우고, 꾸준히 실행해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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