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사과·굴욕 뜻하던 무릎 꿇기, ‘저항’을 담다… 무릎의 사회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인종차별 항의 표시로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은 프로풋볼리그(NFL) 선수들을 비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위 사진은 NFL 경기장에서 벌어진 무릎 꿇기 시위 장면. 아래 왼쪽 사진부터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를 향해 무릎 꿇은 새누리당 의원들, 지난달 특수학교 설립을 요구하며 무릎 꿇은 장애학생 어머니들. 뉴시스 국민일보DB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돈과 지위로 무릎 꿇렸다." '땅콩회항' 사건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1심 재판부는 이렇게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운항을 시작한 항공기를 되돌렸다. 이 과정에서 사무장과 스튜어디스는 그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듬해에는 '백화점 갑질 모녀' 사건이 있었다. 백화점 주요 고객인 모녀가 주차시비 끝에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려 사과하게 했다.

무릎은 '꿇는' 것이다. '무릎을 세웠다'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땅콩회항과 백화점 사건에서 보듯 무릎 꿇는 행위에는 사과, 굴욕, 복종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선거나 운동경기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할 때는 패배를 뜻한다. 그런 무릎 꿇기의 메시지가 최근 상당히 달라졌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어 '저항'을 표시했고, 특수학교의 당위성을 호소한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무릎 꿇기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트럼프가 불러낸 ‘캐퍼닉의 무릎’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선수들의 ‘무릎 꿇기’ 논란을 촉발한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선거 유세에서 “성조기를 존중하지 않는, 국민의례 때 기립하지 않는 선수에게 ‘저 개××를 당장 끌어내. 해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NFL 구단주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을 느닷없이 공격한 발언이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캐퍼닉은 지난해 경기장에서 국가(國歌)가 연주될 때 ‘무릎 꿇기’를 했다. 경찰의 흑인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1년 이상 지난 일을 대통령이 끄집어내자 ‘애국주의 대 인종주의’ 프레임을 통해 정국을 전환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게이트 수사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릎 꿇기는 인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캐퍼닉의 무릎 꿇기는 애초에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것이었다. NFL 선수와 구단주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후 경기마다 국가가 울릴 때 선수들은 캐퍼닉이 1년 전에 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과 표현의 자유 수호 의지를 표했다.

내년 시즌 NFL 후원사인 나이키는 성명을 통해 “무릎 꿇기를 통한 선수들의 의사 표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는 공연장에서, 민주당 실라 랙슨 리 하원의원은 의회에서 무릎을 꿇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도 헤르타베를린 선수들이 경기 전 일제히 무릎 꿇기에 동참하면서 무릎을 통한 저항은 유럽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무릎에 저항을 담기까지

사실 캐퍼닉이 처음 선택한 저항의 방식은 무릎을 꿇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8월 경기에서 국가 연주가 시작되고 선수와 관중이 기립할 때 그는 경기장 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당시엔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며칠 후 같은 행동을 했을 때도 그랬다. 그 다음 경기에서 세 번째로 하자 한 기자가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논란이 일었고 캐퍼닉은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존경을 표할 수 없다”며 저항의 표시임을 분명히 했다.

이후 캐퍼닉은 전직 미식축구 선수이자 해병대 출신인 네이트 보이어의 편지를 받고 방식을 바꿨다. 그냥 앉아 있는 건 무례하다는 지적에 다른 선수들이 서 있는 대열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는 시각적으로도 중요한 선택이었다. 그냥 앉은 자세는 불만스럽거나 못마땅해 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무릎 꿇기는 진지한 분위기를 풍긴다. 성조기를 모욕한다는 비난에 대응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은 유지한 것이다.

약자의 무릎, 저항을 이끌다

한국에서도 무릎은 저항이란 맥락에서 등장한 적이 있다. 10월 유신 이듬해인 1973년 3월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은 여성의 치마 끝이 ‘무릎 위 17㎝’ 이상 올라갈 경우 처벌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고 통제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무릎을 드러낸 미니스커트는 남성의 장발과 함께 소극적인 저항 코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무릎에 ‘꿇다’가 따라붙을 때는 강자와 권력에 대한 약자와 소수자의 굴복 또는 굴욕을 상징하곤 했다. 역사적으로는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가 대표적이었다.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인조는 결국 청 태종에게 항복하며 무릎을 꿇었다. 역사는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땅콩회항과 갑질 모녀 사건의 무릎 꿇기도 처음엔 인조의 수모와 다르지 않았다. 상사와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이들은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굴욕을 접한 대중은 대신 분노했고 책임을 따졌으며 대책을 촉구했다. 약자의 무릎 꿇기는 그 모멸감이 대중에 전이되면서 여론의 저항을 불렀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장애아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공개석상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들 스스로 “무릎을 꿇는 이에게나 그것을 보는 이에게나 그것은 모두 수모와 모멸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내가 무릎을 꿇는 것은 나만의 굴욕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수치라는 메시지가 그 행위에 담겨 있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인간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무릎 꿇기란 행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됐기에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느낀다”며 “최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런 공감과 반응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강자도 꿇는다. 다만…

무릎 꿇기가 약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때로는 강자도 무릎을 꿇는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해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였다. 두 나라는 냉전체제의 양 진영에 각각 속해 있었고, 국민 간의 감정도 매우 나빴다. 무엇보다 나치의 폴란드 침략이라는 과거사 문제가 컸다.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에 도착해 유대인 위령탑을 찾았다. 1943년 나치 점령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탑이었다. 주변 바닥은 초겨울비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정해진 대로 헌화를 했고 다음은 가볍게 묵념할 차례였다. 브란트 총리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있었다. 나치의 만행을 무릎 꿇고 사죄한 이 장면은 폴란드 국민감정을 움직였고 유럽 외교사의 흐름을 바꿨다.

하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때 강자의 무릎 꿇기는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큰절을 했다. 선거전이 시작된 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유권자에게 “한 번만 도와 달라”며 읍소한 거였다. ‘동정심에 호소하는 신파정치,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시변통’이란 지적이 제기됐으며 실제 선거에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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