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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고승욱] 페어바둑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팬이 크게 늘었다. 그 중에는 잘 두지 못해도 열심히 보는 사람이 많다. 야구 중계방송을 선수들만 보지 않는 것처럼 몇 가지 규칙만 알면 프로기사의 정상급 대국을 즐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숫자가 빽빽한 기보를 보며 수순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TV중계 덕도 봤다. 지금은 전문적 해설을 곁들인 영상을 인터넷에서 언제라도 찾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눈길을 끄는 새로운 대국 방식이 꾸준히 개발된다. 과거에는 제한시간을 이리저리 바꾸는 게 유행이었다. 각각 1분만 주고 초읽기에 들어가는 초단기 대국도 그래서 나왔다. 생중계에는 이보다 좋은 게임이 없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名人)’의 소재가 됐던 1938년 혼인보 슈사이 은퇴기의 제한시간이 40시간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대국방식에 변화를 준 페어바둑이 인기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박정환 9단·이슬아 4단이 반집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 뒤 스승과 제자, 프로와 아마추어 같은 여러 조합이 생겼다. 우리나라 최강 혼성팀은 SG배를 2년째 거머쥔 박승화 7단·최정 7단이다.

페어바둑은 잘 두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한 팀 두 명이 번갈아 두는데 같은 팀끼리 이야기를 나누면 실격이다. 상대방은 물론이고 우리 편의 의도와 전략을 꿰뚫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바둑을 수담(手談·손으로 하는 이야기)이라고 한다. 페어바둑은 초보자에게도 수담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다.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가 베이징특파원들을 만나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이창호 9단, 창하오 9단과의 페어바둑이 곧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중관계가 최악이지만 서로가 상대방의 처지와 생각을 정확히 알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곤란한 상황을 타개할 때 슬쩍 한 수 미루는 페어바둑의 묘미를 사드로 한껏 꼬인 한·중 관계에서 맛볼 수는 없을까.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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