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태국의 ‘한국어 열풍’… “공유 오빠랑 말할 때 틀리면 안돼요”

태국 방콕 싸라위따야학교 한국어 전공반 학생들이 지난 10일 한국어 수업시간에 한글을 테마로 만든 작품을 펼쳐놓고 즐거워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싸라위따야학교 학생들이 한국어 교과서 문제를 풀고 있다. 교육부 제공
 
한 태국 학생이 만든 엽서에 자기 소개와 좋아하는 한국 가수, 배우 이름이 한글로 정성껏 적혀 있다. 교육부 제공






방콕 싸라위따야 학교 선생님
‘대장금’에 반해 한국어 매진
한류 매력에 푹 빠진 학생들
대학입시도 한국어 과목 채택


“한글은 참 귀여워요.”

열여섯 여고생 포리샤의 눈에 한글은 예쁜 글자다. 초등학생 때 태국에 불어닥친 한류 열풍을 계기로 접한 한글은 매력적이었다.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으로 만들어지는 글자들이 신기했고 아기자기했다. 최재원. 예쁜 한글 이름도 고민해서 만들어봤다. 태국어는 자음 44개, 모음 32개로 구성된다. 완벽하게 구사하려면 태국인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포리샤는 한글이 좋아진 게 먼저였는지, 한국 연예인이 먼저였는지 딱 부러지게 말하진 못했다. 그래도 한글과 한국문화가 삶에서 조금씩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지난해 고교생이 되자마자 한국어 전공으로 진로를 정했다. 전공반 경쟁률은 4대 1. 전공반에 들어간 기쁨도 잠시, 변화무쌍한 조사의 쓰임새나 복잡한 존댓말은 골치 아팠다. 한글은 쉬웠지만 한국말은 어려웠다. 그래도 허투루 배우지 않는다. 그는 "송중기, 공유 오빠와 말할 때 틀리면 안돼요"라며 웃었다.

대장금 선생님, 도깨비 학생

포리샤는 방콕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싸라위따야학교에 다닌다. 중·고교생 3700명이 외국어 수학 과학 등으로 전공을 나눠 공부하는 곳이다. 태국 고교는 철저하게 서열화돼 있는데 싸라위따야학교는 상위권 그룹에 속하는 외국어 중점학교다. 모두 12개 전공에 따라 수업하는데 한국어 전공반도 그중 하나다.

지난 10일 찾은 한국어 교실에선 수니싸(27·여) 교사가 조사 ‘과’ ‘와’ ‘에’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교재에는 지우개가 책 위에 놓인 그림 옆에 ‘지우개는 어디 있습니까’란 질문이 쓰여 있었다. 아래 빈칸에 학생들이 ‘지우개는 책 위에 있습니다’라고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교재는 올해 한글날을 맞아 한국과 태국 정부가 공동으로 펴낸 한국어 교과서다. 수니싸 교사는 “새 교과서는 모두 여섯 권인데 체계적으로 배운다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태국에선 공식 한국어 교과서가 없어 한국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용으로 제작한 한국어 교재나 어린이용 동화책 등이 짜깁기돼 활용됐었다.

이 학교 교사로 수니싸 교사의 수업을 참관한 싸추껀(29) 교사는 드라마 대장금 때문에 한국어 교사가 됐다. 그는 “교사가 되고 싶긴 했는데 뭘 가르쳐야 의미 있는 일일지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금을 보고 한국문화, 특히 음식에 감탄했고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싸추껀과 수니싸, 두 사람은 한국-태국 양국 교육부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태국인 한국어교원 양성 장학프로그램’ 제1기생이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한국 대학에서 연수한 뒤 지난해 태국 공립학교에 임용됐다. 한국에서 설악산 여행과 맥주가 좋았다는 씨추껀 교사는 “한국어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알려준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궁금한 아이들

이 학교 한국어능력시험(TOPIK) 최우수자인 까녹펀(17)양은 한국 이름이 다빈이고 드라마 도깨비와 아이돌그룹 엑소를 좋아한다고 했다. 다빈이는 한국어능력시험 만점에 가까운 실력답게 정확한 발음으로 “오빠들하고 만나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도깨비 촬영지인 강원도를 가보는 일이다. 한국 유학도 생각하고 있고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1차 목표는 일단 한국에 가는 것이다.

학생 인터뷰는 ‘릴레이’여야 했다. 까녹펀양에게 질문하는 와중에 옆에 있던 동급생 송쌩양이 자기 이름은 수미이고 가수 갓세븐을 좋아한다며 끼어들었다. 기자가 한 학생에게 말을 걸면 친구들이 에워싸고 ‘나도 말할 게 있다’ ‘내게도 물어 달라’는 강렬한 눈빛을 보내왔다. 외면하지 못해 질문을 던지면 자신의 한국 이름부터 시작해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 가수의 이름과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지명이 튀어나왔다. 10대들에게 익숙한 아이돌그룹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기자가 따라가지 못해 쩔쩔매면 스스럼없이 “몰라요?”라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춤도 보여줬다. 그래도 모르면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안타까워했다.

쑤리랏 싸쑨턴 교감은 “음악 드라마를 비롯해 한국 제품을 태국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한국어는 중요하다”며 “한국 정부가 파견한 한국인 교원과 (한국에서 연수를 시킨) 태국인 교원 다 훌륭하다. 다만 학생들이 태국에서만 배우면 한계가 있으니 짧더라도 한국 유학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콕=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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