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유명 메이커



소녀는 혼자 훌쩍이면서 등교하는 날이 많았다. 그날도 실내화만 신은 발을 종종거리면서 앞서고 뒤에 어머니가 운동화를 들고 따르고 있었다. 또 신발 때문에 집에서 야단을 맞은 것 같았다. 가세가 어려운 어머니로서는 10세 딸이 그저 멋을 부리는 줄만 알았다고 했다. 값싼 운동화를 신은 소녀를 두고 또래 아이들이 놀려서 학교 가는 것이 싫다는 말을 들었다. 생활이 어려운 홀어머니는 재래시장에서 값싼 옷이며 신발을 살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본다. 그때는 ‘국산품 애용’이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 외제를 쓰는 행위를 매국이라고까지 했다. 그렇게 허리를 졸라매고 국내기업을 살려서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않았던가.

세상이 바뀌어 국제화시대에는 외제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명품이라는 유명 메이커 제품으로 몸을 휘감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광고 많이 하는 제품이 유행을 선도하면서 끝내 어린이들마저 메이커 물결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러한 병적인 사회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점점 힘들게 된다. 과거 골목에서 상권을 유지하면서 오순도순 살 때를 생각해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동네 양복점, 양장점이 모두 사라졌다. 구둣방에서 신발을 사고 동네 재래시장에서 생필품을 얻으며 마을 단위로 서로 돕고 살았다. 소비자들이 유명 메이커를 찾으면서 진정한 수제는 사라졌고 우리의 건강한 기술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여자 아이가 국산 운동화를 싫어하는 것을 두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외국에 로열티를 주면서 더 비싸게 사는 소비심리를 탓할 수만은 없다.

신라 때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귀족 자제들이나 왕자들은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서 중국 복장에 중국말을 했다. 오늘의 유학생들이 저희끼리 영어로 대화하면서 기성세대를 ‘된장’이라고 폄하하는 것도 다 어른들의 잘못이 아닌가. 이 청명한 가을에 나 자신부터 외제를 지니고 다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글=오병훈(수필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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