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미로 체험



벼르던 미로공원에 가봤다. 혼자 갔다가 애먹었다는 체험기를 읽고서 연휴 일행 많을 때까지 미뤄뒀던 터였다. 날은 화창했고 가족 여행객들로 공원은 북적였다. 그 뒤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면 미로 빠져나오기는 일도 아닐 거라는 예상은, 하지만 살짝 빗나갔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헤맨 마의 구간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헤매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는 일은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길 몰라? 허 참, 허 참!을 되뇌는 장인 앞에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도만 들여다보는 사위는 그중 딱한 경우였다. 허 참, 그냥 재미로 헤매도 될 일을 가지고 왜 저리 사위에게 점수를 잃고 계실까. 돌담 미로를 헤쳐 나가던 한 건장한 젊은 아빠는 연성 펄쩍펄쩍 뛰며 담 뒤를 넘겨다보고, 어린 아들은 존경 어린 눈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빠를 올려다본다. 이 가족은 내가 나오고도 한참 뒤 출구에 도착했지만 아빠 목말을 탄 아들은 퍽이나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세 번째 뺑뺑이 돈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아가씨들은 서른 번이라도 뺑뺑이를 돌 기세였다.

가장 마음 뿌듯했던 광경은 기운 넘치는 아이들이었다. 쨍쨍한 햇살 아래에서 애들은 먼지를 피워 올리며 뛰어다녔다. 여기 막혔어요! 외치며 뛰쳐나오고, 옆길로 들어가서는 또 막혔어요! 외치며 뛰쳐나오곤 했다. 저기도 들어가 봐, 저기도! 손가락질하는 어른들의 짓궂은 주문에도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즉각 따라주었다.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광경이었다. 삶은 이런 미로 같아서 우리는 번번이 길을 잃고 헤맨다. 막다른 길을 돌고 또 돈다. 하지만 저렇게 기운차게 거칠 것 없이 뛰는 아이들이 옆에 있으니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우리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이유다. 혹 저물녘 안개 속에서 홀로 미로를 헤매더라도, 그런 아이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아니, 내가 한때 그런 아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몰려선 출구 앞 성취의 종이 뎅그랑뎅그랑 울린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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