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올바른 판단



길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얼핏 보니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 같았다. 한 청년이 남자를 인도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옆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했다. 청년의 옆얼굴이 낯이 익었다. 구경꾼을 헤치고 다가갔더니 바로 우리 이웃집 학생이었다. “아니 학생, 어떻게 된 일인가?” “안녕하세요. 이 아저씨가 차도에 쓰러져 있기에 인도로 옮겨주려고요. 날도 저물어가는데 여기서 잠들면 교통사고라도 당할 것 같아서요.” “그래, 잘 했어. 119구조대에 신고는 했고?” 옆에 있는 분이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40대로 보이는 그 사내는 남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옷차림이 깨끗하지 못했다. 아직도 만취 상태에서 헤매는지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구조 차량이 왔다. 경찰차도 도착했다. 그 사내를 차에 싣고 신고한 사람이 누구이며 학생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은 뒤 서둘러 떠났다. 그제야 구경꾼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 흩어졌다.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 학생에게 물었다. “그 사람을 도와준 것은 잘한 일이지만 만약 위급한 상태였다면 어떻게 할 뻔했어? 가해자로 몰려 수사를 당할 수도 있었는데.” 학생은 빙그레 웃으며 “그래도 차도에서 더 큰 사고를 당하지 않았잖아요. 위급한 상황은 수습해 놓고 봐야지요.” 그래 맞다. 내가 괜한 우려를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몇 해 전의 숭례문 화재가 생각났다. 진화가 늦다는 여론에 소방 관계관은 문화재라 지붕을 뚫을 수 없어 물을 뿌리지 못했다고 했다. 화재 진압은 관할 소방서장의 고유 권한이다. 우리는 불이 나면 맨 먼저 본 사람이 꺼야 한다고 배웠다. 화재가 났는데 주인에게 물어보고 불을 끄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위급한 일을 보고 외면하는 건 큰 잘못이다.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웃집 학생의 착하고 용감한 행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미래를 그려본다.

오병훈(수필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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