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남자다움



새벽 비행기 안. 자리 운이 좋지 않다. 가운데 자리인 데다 양옆에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들이다. 둘 다 다리를 떠억 벌리고 앉아 있다. 아무리 옹송그려도 어딘가가 닿는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자세로 앉는 거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안 그러는 남자들도 있으니 신체적 불가항력도 아닐 테고, 저걸 남자다움의 표상이라고 여기는 걸까. 그러면서 책을 펼친다. 게리 폴슨의 ‘피시본의 노래’.

게리 폴슨. 그는 엄청나게 남자다운 소재가 특기다.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기, 극한상황 헤쳐 나가기, 비정한 사회에서 싸워 버티기. 주인공도 거의 언제나 남성이다. 80세 가까운 그가 올해 내놓은 이 책 역시 남자 둘이 숲 속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다. 거동도 자유롭지 않은 노인은 자신이 겪은 전쟁과 술과 여자에 대해 말하고, 열 살 남짓 아이는 물고기, 개구리, 뇌조, 토끼를 사냥하며 먹을 것을 마련한다. 폭력과 불법과 죽음. 늙고 어린 두 남자는 그 폭탄 같고 칼끝 같은 세상을 지나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삶을 시로 만들어준다. ‘먹지 않을 것은 죽이지 마라. 숲, 삶, 날씨, 음식, 영혼-살아가면서 이 모든 것이 다시 너에게 돌아오게 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노인의 말이다. ‘거미는 나보다 더 나은 사냥꾼이에요. 뇌 크기가 핀 대가리만 할지 몰라도, 나보다 나아요. 나는 사물의 속의 속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애쓴다.’ 학교에서 한 달 만에 쫓겨난 아이의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가 아닌 문장이 없는 문체에 실린 이런 말들이 고요하면서 강력한 파문을 남긴다. 작가에게 경의를!

우리가 이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을 배웠으면 좋겠다. 숲이 아니라 도시에서 발휘되는 남자다움. 그것은 남자다움에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으로 퍼질 것이다. ‘쓰지 않을 돈은 벌지 마라. 물, 종이, 음식, 멸시-우리가 던지는 이 모든 것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다.’ 어른들이 이런 글을 읽고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의 속의 속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애쓴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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