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계란 포비아’ 줄었지만… ‘살충제 파동’ 여전한 네덜란드


 
지난 12일 암스테르담의 한 마트에서 주부가 계란을 구입하고 있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일어난 지 2개월 된 네덜란드의 계란 소비량은 파문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계란이 가득한 진열장에 유기농 제품만 다 팔려나갔다.





지난 12일 오후 암스테르담 뮤지엄플레인역. 대형마트인 앨버트 헤인에서 장을 보던 에바 베인스트라(42·여)씨는 10종류가 넘는 계란을 유심히 살피다가 ‘유기농(Biologische)’이라고 적힌 제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예전엔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이제 좀 더 비싸더라도 유기농을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살충제 계란 파동 직후 일주일 동안 계란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의 진원지인 네덜란드는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계란 요리 전문 식당 오믈레그(Omelegg)에서도 시민들이 각자 노란 오믈렛을 즐기고 있었다. 주방장은 “손님들이 찾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건강한 계란을 재료로 쓴다는 것이 홍보돼 더 장사가 잘 됐다”며 으쓱했다.

사태 두 달여 만에 계란 소비는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마트 선반엔 계란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트 관계자는 “사태 직후 3∼4일은 계란이 전량 회수됐지만 정부가 매일 어느 계란이 안전하고 그렇지 않은지 공지하면서 다시 계란을 납품받았다”고 말했다.

살충제 계란이 남긴 불안과 불신

살충제 계란 사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정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베인스트라씨는 “정부는 이제 달걀이 안전하다고만 말할 뿐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고,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딸의 엄마인 아니타 메이스(36)씨는 “정부 대처가 너무 늦었다”며 “지난해 11월 정부가 피프로닐 사용을 알고도 방치한 탓에 사태를 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 언론 타게스슈피겔은 지난달 24일 네덜란드 정부가 피프로닐이 사용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1년 전에 받고도 유럽연합(EU)에 알리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소비자단체 푸드워치의 쥬렌 드 바(32)씨는 “정부 대처가 빨랐다면 소비자들은 적어도 7개월 먼저 살충제 계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정부는 어떠한 사과나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제의 살충제를 판 칙프렌드(Chickfriend)는 2014년 설립해 살충제 효과를 광고해왔는데 어떻게 3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20∼25%의 농가가 업체와 계약하기까지 위험을 인지 못 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사태 직후 매일 어떤 계란이 안전한지 정부가 공지하는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빵과 같은 가공식품에 함유된 계란 검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이다. 드 바씨는 “사태가 가라앉고 관련자가 구속됐다고 해서 문제를 덮어선 안 된다”며 “정부와 산업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로 네덜란드에서 양계농장이 입은 직접적 경제적 손실만 약 3300만 유로(442억5200만원)로 추정된다.

세계로 퍼져나간 네덜란드 계란

끝나지 않은 문제는 또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살충제 계란의 존재를 누가 먼저 알았는지 서로 미루는 와중에 살충제 계란은 무려 40개국에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 현재진행 중인 셈이다. EU 회원국들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수입된 계산을 전수 조사해 폐기했으며 독일은 유통되는 모든 계란을 조사했다. 영국은 냉장식품까지 모두 수거했다. 이외 국가들도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네덜란드 계란 수입 여부를 점검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한 국가의 살충제 문제가 초국가적인 재앙으로 확산된 이유를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으로 설명한다. 나라마다 동물 복지, 양계농가 사육 환경 등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시장이 개방되면서 똑같이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 그 결과 대량 사육을 통한 생산비 낮추기 경쟁과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한 수출 확대가 이뤄진다.

김영한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는 “지구 정반대 네덜란드의 문제가 아시아까지 단숨에 번진 것은 국제적인 교역이 점점 더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라며 “자유 시장경제의 무한 경쟁, 생산비 절감 압박만으론 사태를 모두 설명할 수 없겠지만 불법 행위를 유발시킨 하나의 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살충제를 사용한 당사자에게 무조건 책임을 넘기기보다 그들이 왜 불법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인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글·사진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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