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양계농장 출혈경쟁, 값싼 살충제 뿌렸다… 네덜란드 르포

네덜란드의 한 양계장에서 닭이 마당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계란 중 약 5%가 이런 유기농 농장에서 생산된다. 닭장 안에선 닭 6∼7마리당 1㎡의 공간이 보장돼 있고 바깥에는 마리당 4㎡의 공간이 확보돼 있다. 바커 디어 제공


‘닭의 친구’라는 의미인 칙프렌드(Chickfriend)는 네덜란드 농부에게도 고마운 친구였다. 이 회사의 살충제를 사용하면 2개월마다 소독하는 대신 8개월에 한 번만 뿌리면 된다고 광고했다. 가격은 다른 살충제와 똑같았다.

네덜란드 렐리스타트에서 산란계 농장을 가지고 있는 제프 로버스(52)씨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무려 4배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졌다”고 회상했다.

칙프렌드 살충제에서 인체에 유해한 피프로닐이 발견되면서 친구는 사기꾼으로 추락했다. 칙프렌드 간부 2명은 지난달 10일 의도적으로 피프로닐을 사용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로버스씨는 “칙프렌드와 계약한 농장들은 거의 폐쇄되거나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전했다.

청정 낙농업 국가 이미지를 가진 네덜란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지난 11일 기자는 암스테르담의 식품 소비자 단체 푸드워치 사무실을 찾아가 물어보았다. 푸드워치 활동가 코리네 코넬리사(35)씨는 “계란 가격이 30년째 거의 그대로”라고 말했다. 현지 마트에서 팔리는 계란을 기자가 살펴보니 유기농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당 300원 내외였다. 살충제 계란 사태의 원인은 값싼 계란에 있었다.

네덜란드는 자국 농업을 보호하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달리 농업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자유무역을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농축산물 수출국이 됐지만 네덜란드 농부들은 유럽 전역은 물론 전 세계 농부들과 경쟁해야 했다.

현지의 또 다른 양계장 운영자인 프랭크 그로벤(49)씨는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사람들이 점점 늘면서 농부들은 생산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로벤씨도 칙프렌드 살충제를 쓸 뻔했다고 한다. 동물복지단체 바커 디어(Wakker Dier)의 안네 히홀스트(31)씨는 “계란 품질이 비슷하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건 가격이었다”며 “농부들은 생산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네덜란드 닭 사육 환경은 한국보다 훨씬 선진적이다. 산란계 95%가 비좁은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서 사육되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2012년부터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도 살충제는 필요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바깥에서 자라는 닭은 20%뿐이고 대부분의 닭은 여전히 닭장 안에서 뒤엉켜 지낸다. 단지 두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는 자유만 주어졌을 뿐 여전히 진드기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번 사태로 농가 150여곳이 폐쇄되고 닭 25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몇 주 더 기다렸다면 닭이 섭취한 피프로닐은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상황이었지만, 농장주 입장에선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농장에 새로운 닭을 채워 넣는 것이 손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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