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사물의 바디랭귀지



우리를 동요하게 만드는 것, 삶에 어떤 소요를 불러오는 것이 늘 거창한 존재들만은 아니다. 흔해서 도처에 널려 있는, 사소한 풍경이 가진 동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테면 방금 내린 커피 한 잔에서 뜨거운 김이 솟는 걸 볼 때 새삼 설레곤 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사물의 바디랭귀지’ 같은 거라서, 시끄럽지 않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다.

사물과의 조우는 내가 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소외된 이방인이라는 걸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내가 어느 공간에 있든, 사물의 개체수가 나보다 많을 테니까. 사물의 정글 속에 나 홀로 던져졌다는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수도 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건 책상 위의 스탠드, 옷장의 문짝일 수도 있고, 가로수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려고 한다. 가로등이 반짝 켜지는 순간을 목격한다면 그게 단지 점등 시간대여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어쩌면 가로등이 윙크를 보내는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물도 어떤 몸짓과 표정, 그리고 눈빛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섬세하거나,너무 무료하거나, 외롭거나 해서 사물의 신호를 유독 잘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두 배로 사는 느낌이 들 것이다. 세상의 규격이야 그대로겠지만, 두 배 더 촘촘한 그물망으로 바라보니까.

촘촘한 그물망에는 이런 풍경도 걸려든다. 바퀴가 여섯 개 달린 회전의자, 식탁세트의 한 축을 담당했을 것 같은 의자, 1인용 소파까지. 출처가 달랐던 의자들이 모여서 거리에 나와 있는 풍경 말이다. 애초에 실내용으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그러나 지금은 인생 2막을 시작한 의자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좀 걷다가 우연히 합석하게 된 것처럼 모여 있는 의자들. 활달한 그들 곁으로 가면 대화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대화를 하는 중인데 어디 사람이 기웃거리고 있냐는 듯이. 의자들에게 어떤 ‘격’이 있는 듯해서 그 위에 함부로 앉지도 못하겠고, 나는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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