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할머니의 사탕



달리는 전철 안에서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옆에 앉은 젊은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제지했으나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손에는 로봇 장난감을 들고 노래를 하는데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옆자리의 아가씨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지 자리를 피했다. 또 앞에 서 있던 신사도 눈살을 찌푸릴 뿐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도 아이를 어찌할 수 없는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그냥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할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엄마한테 떼를 쓰기 시작했다. 뭐라고 떠들지만 엄마는 더 이상 아이를 제지하지 못했고 혼자 난감한 듯 승객들 눈치만 볼 뿐이었다. 보다 못한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나무랐다. “얘, 조용히 해. 여기서 떠들면 안 돼.”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아이를 낳을 줄만 알지 기를 줄을 몰라.” “그러게 말이야.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혀를 찼다.

승객들이 아이를 나무라는 줄 아는지 엄마가 손짓과 “어어어…” 하는 말을 섞어 아이에게 뭐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아이 엄마가 언어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잠시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잦아들고 열차의 소음만이 더 크게 들렸다. 옆에 있던 한 할머니가 가방에서 사탕 몇 개를 꺼내 “아가, 사탕 줄까.” 아이는 손을 내밀면서도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제 엄마가 받아도 좋다는 눈짓을 하자 그제야 사탕을 받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는 지루하고 무거운 전철 내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으리라. 게다가 무거운 공간에서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게다. 어린아이에게는 훈계나 따끔한 매질보다 사랑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할머니의 사탕 한 알이 몇 마디 훈계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눈을 감았다. 전철은 도심을 향해 동호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글=오병훈(수필가),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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