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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쌩쌩…‘숲으로 다리’건너 가을속으로

강원도 화천군 ‘숲으로 다리’를 찾은 여행객이 저녁 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든 북한강 물길을 호젓하게 걷고 있다. 이른 아침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 몽환적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쟁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 꺼먹다리.
 
서오지리 연꽃단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수련.
 
분쟁 지역 탄피로 만든 세계 평화의 종(위 사진), 화음동 정사지 계곡 바위에 복원된 송풍정(아래 사진).




산천어로 유명한 강원도 화천은 ‘물의 고장’이다. 화천댐과 평화의 댐, 파로호와 춘천호 등 2개의 댐과 2개의 호수가 있다. 물은 화천 풍경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그 물을 즐길 방법도 다양하다. 붕어섬을 호젓하게 산책하거나 호수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 청명한 가을이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산소(O₂) 100리 길’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가운데 ‘숲으로 다리’는 백미다. 두 발로 뚜벅뚜벅 강을 따라 걸어도 좋고 자전거로 쌩쌩 달려도 좋다.

화천은 수도권에서 먼 곳으로 인식됐다. 한때 산 고개를 굽이굽이 넘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야 닿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많이 달라졌다. 넓은 직선로가 시원하게 열려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산소길’은 원시림을 관통해 가는 숲속길과 물길, 물안개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길, 연꽃길 등을 지난다.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 삼아 떠나는 ‘물 위의 산책’이 따로 없다. 길이가 40㎞에 달해 하루 만에 걷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산소길의 백미인 ‘숲으로 다리’만 다녀와도 그만이다. 물위에 뜨는 플라스틱 구조물을 촘촘히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판자를 깔아 만들었다. 1.2㎞ 길이의 폰툰다리를 따라 원시림 상태로 보존된 흙길을 걷는 총 2.2㎞ 길의 일부다. 소설가 김훈씨가 이름을 붙였다.

다리로 들어서면 수채화 같은 화천의 비경 속으로 빠져든다. 오르막 없이 시종일관 편안하다. 수면은 잔잔하고, 흔들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여름을 초록으로 물들였던 숲이 가을빛을 띠며 북한강 물줄기에 비친다. 뭉게구름 떠가는 하늘이 수면에 내려앉아 풍경을 넉넉하게 해준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면 가을속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호수와 주변 산자락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세포 구석구석 찾아든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다리지만 자연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리 중간쯤에는 잠시 쉬어 가도록 벤치가 놓여 있다. 그 옆 산천어 모양을 한 나무 조각이 반갑다. 목을 축일 수 있는 수도꼭지도 있다. 바로 옆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호스로 연결했다. 이른 아침에 산소길에 들면 기온차로 인해 피어오른 물안개가 몽환적 풍경을 빚는다. 해질녘에는 북한강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일몰도 함께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숲길이 이어진다. 생태가 잘 보전돼 원시림 느낌을 물씬 풍긴다. 강기슭을 따라 화천읍내로 연결된다.

산소길을 모두 느끼려면 자전거 투어가 제격이다. 붕어섬 입구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자전거도로 시작부터 북한강을 옆에 두고 달린다. 처음 만나는 화천의 명소는 붕어섬이다. 섬이 붕어를 닮았다는 설과 붕어가 많이 나서 이름지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강 가운데 섬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섬에서는 공중에 매달린 줄을 타고 이동하는 ‘하늘가르기’ 등 짜릿한 레저도 가능하다.

산소길 서쪽 끝은 하남면 서오지리 연꽃단지다. 지촌천이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있다. 약 19만8400㎡ 터에 13만2300㎡ 연밭이 자리한다. 1965년 춘천댐 완공 이후 쓰레기가 쌓이고 썩은 내가 진동하던 습지가 2003년 연꽃단지 조성으로 생명을 되찾았다. 요즘 수련(睡蓮)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화천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꺼먹다리가 나온다. 길이 204m의 다리 상판이 검은색 콜타르 목재라서 얻은 이름이다. 등록문화재 110호인 꺼먹다리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교각은 일본이, 철골은 광복 후 러시아(옛 소련)가, 상판은 6·25 전쟁 이후 한국이 올렸다. 교각에는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전우’ 등 주요 전쟁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꺼먹다리에서 2.5㎞ 정도 가면 딴산유원지다. 물가에 자리잡은 작은 동산으로 섬처럼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름에는 인공폭포가 장엄하게 흐르고, 겨울에는 하얀 빙벽이 만들어진다. 주변에 토속어류생태체험관이 있다. 황쏘가리, 금강모치, 연준모치, 버들치, 산천어, 무지개송어 등 다양한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자전거도로는 화천댐까지 이어진다.

화천의 대표적인 여행지 중 하나가 비수구미다. 화천댐이 생기면서부터 육로가 막혀 오지 중의 오지가 돼 ‘육지 속의 섬마을’이라 불리기도 했다. 6·25전쟁 직후 피난 온 사람들이 정착해 화전밭을 일구며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지금은 비포장 찻길이 난데다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오지의 맛은 예전만 못하다. 청정 계곡 비수구미 산책로를 따라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고, 나물 향 살아 있는 산채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평화의 댐도 가볼 만하다. 비목공원과 세계 평화의 종이 볼거리다. 비목공원 내 십자가 모양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녹슨 철모가 전쟁의 참화를 대변해준다. 세계 평화의 종은 30여 개 분쟁 지역의 탄피를 모아 만들었다.

평화의 댐 아래쪽에는 ‘국제평화아트파크’가 조성돼 있다. 평화를 약속하는 높이 38m의 거대한 반지 조형물 주위로 실전에 사용했던 무기가 배치돼 있다. 쇠사슬에 묶인 전차, 포신에 노란 나팔을 달고 오색 바람개비로 장식한 탱크, 장난감과 놀이시설로 변신한 대공포 등이 ‘평화를 입은’ 작품으로 변모했다.

사내면 삼일리 화음동 정사지(華陰洞 精舍址)는 조선 현종 때 서인의 거두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35∼1705년)이 1689년 기사환국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화악산 북쪽 절경을 이룬 계곡에 사(舍)·암(庵)·정(亭)·대(臺) 등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은둔한 곳이다. 현재 건물은 없어졌고, 송풍정·삼일정만 복원 돼 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눈길을 잡는다. 전서(篆書)로 너럭바위에 새긴 ‘인문석(人文石)’이라는 명문이다. 김수증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화음정사의 조경에도 응용해 넓은 바위에 태극도·팔괘도·하도·낙서 등을 새겼다.

사내면 동부와 춘천 사북면 북부에 걸쳐 15㎞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심산유곡이 곡운구곡이다. 김수증은 경치 좋은 9곳에 방화계(傍花溪)·청옥협(靑玉峽)·신녀협(神女峽)·백운담(白雲潭)·명옥뢰(鳴玉瀨)·와룡담(臥龍潭)·명월계(明月溪)·융의연(隆義淵)·첩석대(疊石坮)라 이름을 붙였다. 표지석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1곡부터 계곡을 따라 가면 곡마다 경치가 다르다.

■ 여행메모
화천 서부는 구리포천고속도로 이용 파로호 제철 잡고기 '어죽탕' 담백


북한강 '숲으로 다리'는 화천읍내에서 가깝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 춘천 나들목에서 빠져 407번 지방도를 타고 간다.

화음동 정사지나 곡운구곡은 경기도 포천을 거쳐 광덕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빠르다. 지난 6월말 개통된 구리포천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편하다.

서오지리연꽃단지는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5번 국도변 '현지사'라는 사찰로 들어가 다리 하나 건너면 닿는다. 연꽃단지 초입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숲으로 다리' 인근에 맛집이 여럿 있다. '미륵바위쉼터' 식당은 매일 직접 만드는 두부로 끓이는 두부전골이 주 메뉴다. 두부 본래의 구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두툼하고 넓게 썬 두부에 팽이버섯과 양념장만 넣어 끓인다. 대이리 '콩사랑'의 두부보쌈, 특선정식 등도 맛깔스럽다.

파로호 가는 길목의 '화천어죽탕' 식당은 북한강과 파로호에서 나는 제철 잡고기를 푹 삶아 뼈를 추려낸 다음, 추어탕처럼 끓인다. 진한 어죽탕이 담백하고 깊은 맛을 풍긴다. 숙소로는 아쿠아틱리조트가 깔끔하다.

화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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