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팜오일과 맞바꾼 열대우림… 동물은 멸종, 사람은 호흡기 질환

지난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리아우주 펠랄라완으로 가는 도로 옆에 팜나무 묘목이 일렬로 심어져 있다. 수백 그루의 나무가 베어진 자리다.



 
6일 찾은 펠랄라완의 팜오일 농장에 막 수확한 팜나무 열매가 가득 쌓여있는 모습.


수십년을 지켜온 나무들이 잘려나간 자리에는 어린 묘목이 줄지어 심겨 있었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지부에서 활동한 잠자미(36)씨는 “고무나무를 베고 돈이 더 되는 팜나무를 심은 자리”라며 “앞으로 볼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리아우주 펠랄라완 지역 팜오일 농장으로 향하는 길. 팜오일 농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었다. 기자가 탄 차의 맞은편에는 팜나무 열매인 ‘생과송이(Fresh Fruit Bunch)’를 가득 실은 트럭이 5분에 한 대꼴로 지나갔다.

팜오일과 맞바꾼 물과 공기

펠랄라완 팜오일 농장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스마디(38)씨는 “1996년 팜오일 농장이 조성되면서 물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깐질(사슴의 일종)도 사라져서 힘들다”고 했다.

깐질은 이곳 주민들이 쉽게 사냥해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스마디씨는 3년 전부터 시장을 찾아 닭과 물고기를 사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시장에서 사는 품목이 하나 더 늘었다. 마실 물이다. 이젠 식수도 구하기 어렵다. 스마디씨는 “팜오일 농장이 생겨서 좋은 점은 팜 열매를 실어 나를 도로가 만들어져 아이들이 학교에 쉽게 갈 수 있다는 것 빼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팜오일 농장이 없던 과거로 돌아가 살고 싶다. 그때는 숲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팜오일은 싸고 질 좋은 식물성 기름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식탁은 풍성해졌지만 주민에게는 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물 부족과 환경 오염은 팜오일 농장 주변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다. 팜오일 농장은 지하수를 퍼올리고 강물을 끌어와 나무를 기른다. 제초제와 살충제는 수로를 타고 강과 토지로 흘러가 물을 오염시킨다. 생활수로 쓰던 강물을 쓸 수 없게 되고, 우물을 깊이 파도 마실 물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팜오일 농장이 커지는 만큼 열대우림은 쪼그라들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아시아의 허파’로 불린다. 규모가 크고 생물 다양성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면적이 줄고 있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지부에 따르면 열대우림이 훼손되면서 야생동물들도 살 터전을 잃었다. 호랑이, 오랑우탄, 수마트라 코끼리 등 멸종위기 동물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지부 활동가 바구스(25)씨는 “1990년 이래 인도네시아에서 31만㎢의 열대우림이 사라졌다”며 “말레이시아 전체 면적과 비슷한 규모”라고 말했다. 그는 “벌목 등 다른 이유도 있지만 팜오일 농장 확대가 주된 이유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열대우림 파괴는 공기오염으로 이어진다. 열대우림을 훼손할 때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장비를 이용해 나무를 한 그루씩 벌목하면 1㏊(0.01㎢)당 5000만∼6000만 루피아(약 420만∼510만원)가 든다. 불을 지르면 200만∼500만 루피아(약 17만∼42만원)면 된다. 시간도 적게 든다.

열대우림을 태우면서 발생한 연기는 대기로 유입돼 먼지 및 각종 화학물질과 결합한다. 짙은 연무는 호흡기에 치명적이다. 2014년 1월 리아우주에서 5주간 연무가 계속돼 주민 2만8000여명이 호흡기 관련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 가뭄도 심했지만 팜오일 농장을 만들기 위해 숲과 땅을 태운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남한보다 넓은 팜오일농장

팜오일은 팜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이다. 크게 팜오일(CPO)과 팜핵오일(PKO)로 나뉜다. 팜오일은 열매의 과육을 짜내 만들고 팜핵오일은 씨앗에서 얻는다. 라면 과자 등 가공식품과 화장품에 사용되지만 팜오일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돼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아는 소비자는 드물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 팜오일 생산국이다. 인도네시아 농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팜오일 생산량은 3450만t이다. 세계 팜오일 생산의 55%에 이르는 수치다.

팜오일 농장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 전역에 분포한 팜오일 농장 면적은 11만6700㎢다. 남한(10만188㎢)보다 넓은 면적이다. 인도네시아 농업부는 2020년이면 팜오일 농장이 13만㎢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산 팜오일은 한국에도 들어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이 수입한 인도네시아산 팜오일(팜유·팜핵유·팜올레인유·팜스테아린유)은 3500t이 넘는다.

인도네시아는 국내외의 환경파괴 우려에도 불구하고 팜오일 생산을 더 늘려갈 계획이다. 조꼬 수쁘리요노 인도네시아 팜농장사업자연합 회장은 지난 8일 “시장 선도자로서 팜오일 생산량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펠랄라완(인도네시아)=글·사진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