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라면·과자 만드는 팜오일, 대규모 환경파괴의 산물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리아우주 펠랄라완의 거대한 팜오일 농장 한가운데에 현지 주민 둠로씨가 서 있다. 숲을 없애고 만들어진 팜오일 농장은 둠로씨 집에서 1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팜나무 수천 그루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얀 나무줄기가 기자의 키보다 7∼8배는 더 높이 뻗었다. 줄기 끝에선 깃털처럼 생긴 잎이 축 늘어져 하늘까지 가렸다. 팜나무 숲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농장은 거대했다. 비포장 흙길 위에는 막 수확한 듯한 팜나무 열매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1∼1.5m 깊이로 파인 수로에는 시커먼 물이 고여 있었다.

현지 주민 둠로(46)씨와 함께 지난 6일(현지시간) 방문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리아우주 펠랄라완 지역의 팜오일 농장 모습이다. 둠로씨는 이넥다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팜오일 농장 옆에 살고 있다. 둠로씨가 사는 곳에는 시나르 시악, 사리 름바, 수브르, 페르크부난 등 인도네시아 정부나 기업이 소유한 대규모 팜오일 농장이 수두룩하다.

둠로씨는 4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둠로씨는 “이곳은 원래 농장이 아니라 다 숲이었다”고 했다. 집 근처에 흐르는 벌릴라스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1996년 이넥다의 팜오일 농장이 들어서면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둠로씨는 더 이상 어부가 아니다. 둠로씨는 “10년 전부터 강에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채취해 파는 농부로 전업했다. 한 달에 200만∼250만 루피아(약 17만∼21만원)를 손에 쥔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지부 활동가였던 프리랜서 기자 잠자미(36)씨는 “팜나무에 물을 대기 위해 강물을 끌어 쓰고 농장에서 사용한 제초제와 살충제가 강물에 들어가 물고기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팜오일은 팜나무 열매 ‘생과송이(Fresh Fruit Bunch)’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이다. 팜오일은 국내로 수입돼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시리얼 마가린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비누 샴푸 세제 립스틱에도 들어간다.

팜나무는 물을 엄청나게 빨아들인다. 팜나무 한 그루는 하루 약 91.26ℓ의 물을 먹는다. 인도네시아 팜 연구소에 따르면 팜오일 농장은 1㏊(0.01㎢)에 140그루의 팜나무를 심는다. 연구소는 팜오일 농장 ㏊당 하루 1만2776ℓ의 물을 쓴다고 밝혔다. 대규모 팜오일 농장에 수로가 있는 이유다.

둠로씨가 사는 마을은 강물이 줄고 식수까지 부족해졌다. 마을 이장 줄리민(37)씨는 “예전에는 4m 정도 땅을 파면 물이 나왔는데 이제는 12m까지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마저도 여러 곳을 파봐야 겨우 하나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독일개발정책연구소는 올해 발표한 ‘인도네시아 팜오일 경작 확대 영향’ 보고서에서 “팜나무와 같은 환금성 작물인 고무나무는 건기에는 스스로 물 소비를 줄이지만 팜나무는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을 빨아들인다”며 “건기가 오면 팜오일 농장 주변 주민들이 물 부족 현상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펠랄라완(인도네시아)=글·사진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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