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밀집닭장’ 속성 사육 20~30% ‘주저앉는 닭’

브라질 상파울루주 바스투스시에 위치한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닭이 닭장 사이에 끼여 있다. 최근 동물보호단체인 MFA 브라질(Mercy For Animals Brasil)에서 이곳 농장의 학대 실태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MFA 브라질 제공


닭장 사이에 닭이 끼여 있었다.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좁은 닭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 끼인 채 방치된 듯했다. 철망을 들어주자 그제야 닭이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연간 8만여t씩 한국에 수입되는 브라질 닭 농장의 실태다.

지난 1일 오후(현지시간) 상파울루주 캄푸스두조르다웅의 한 카페에서 만난 동물보호단체 ‘MFA 브라질(Mercy For Animals Brasil)’의 루카스 알바렝가 대표는 “브라질산 닭이 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지 잘 안다. 크고 싸니까 그런 것”이라며 “한국인들도 그 닭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MFA는 상파울루주 바스투스시에 위치한 농장의 닭들을 동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공개했다. 나무 틀 위에 철망으로 만든 0.25㎡ 정도 넓이의 닭장에 4∼5마리가 욱여넣어져 있었다. ‘A4 용지 한 장보다 좁은 곳’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말은 브라질에서도 적용됐다.

미국 월마트에 매일 3만6000개의 달걀을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농장의 실태에 브라질은 충격에 빠졌다. 동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42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앞으로는 달걀을 먹지 않겠다’는 등의 댓글이 1000여개 달렸다.

MFA는 다음 달 후속 영상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 영상에는 브라질 대형 업체 A사의 육계농장 실태가 담겨 있다. 한국으로도 닭고기를 수출하는 곳이라고 한다. 알바렝가 대표에 따르면 이 농장의 닭들은 빠른 성장속도 탓에 생후 30일쯤 되면 너무 무거워져서 잘 서지도 못한다. 20∼30%는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아예 주저앉아 있다. 닭 한 마리가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브라질 파라나연방대(UFP)의 카를라 몰렌투 교수팀이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 공장식 농장 11곳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농장 중에는 닭의 27%가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알바렝가 대표는 “브라질산 닭은 보통 생후 7주쯤 도살되는데 이때 벌써 2㎏이 넘는다”고 말했다. 아직 병아리여야 할 시기에 어른 닭의 크기가 된 탓에 다리 관절 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브라질에도 몸집이 작은 병아리가 있지만 닭으로 자랄 수 없다. 빨리 크지 않는 병아리는 농장 직원들이 목을 꺾어 죽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학자인 데이빗 카수토 교수는 “육류 업체들이 로비를 통해 힘을 키우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동물복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말했다. 알바렝가 대표는 “브라질은 육류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총 10만7399t의 닭고기 중 8만8995t이 브라질산이다. 순살치킨 등에 쓰이는 닭고기는 대부분 브라질에서 길러졌다고 보면 된다.

상파울루(브라질)=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