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찐 고구마 두 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수레에서 짐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뒤에서 수레를 밀던 두 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 검은 비닐 뭉치를 들고 “할아버지, 짐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며 수레에 실어주었다. 수레를 밀어준 것도 모르는 듯 떨어뜨린 짐을 찾은 것에 대해서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노인은 크고 작은 비닐봉지를 싣고 다니면서 상점에 배달해주는 포장용기 장수였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노인이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 아니요?” 하고 물었다.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봐, 학생들.” 인사를 하고 가려는 학생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노인이 내민 것은 비닐봉지에 싼 찐 고구마 두 개. 내게도 하나를 건네는데 손이 새까맣다. 여학생들도 선뜻 내키지 않았으리라. 아마 노인이 일을 하다가 어느 구석진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힐 때 허기를 달래려고 가져왔을 것이다.

하도 권하기에 마지못해 조금 베어 물었으나 쉽게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새 친숙해졌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자식이 둘이라고 했다. 아비 재산이라고는 작은 아파트 한 칸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것마저 내놓으라는 것을 못 준다고 했더니 연락을 끊었고. 혼자 몸이라면 다 줘버리고 노숙이라도 하겠는데 병든 할멈 때문에 그도 저도 못한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일해서 할멈 치료비를 대다가 힘에 부치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나.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학생들도 어느새 손수건을 꺼냈다. 손에 들고 있던 고구마와 노인을 번갈아 보면서 다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학생들은 먼저 가라고 하자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뒤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언덕 위로 올라갔다.

작은 관심들이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가. 관심을 가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장벽도 허물 수 있고 사랑이 싹트게 된다. 작은 사랑의 실천이 절실한 때가 아닌가. 노인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보인다. 마음으로나마 노인의 건강을 빌어본다.

글=오병훈(수필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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