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기부의 진화, 돈 안 내도 돈이 쌓인다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부 방식도 변하고 있다. 카드 포인트 기부, 소액결제 위주의 크라우드 펀딩 기부를 넘어 이제는 ‘돈이 들지 않는 기부’까지 실험 중이다. 특정 액수를 기부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과연 제대로 쓰일지 믿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기부를 꺼려 왔던 이들도 언제든 나눔에 참여할 수 있다. 필요한 건 오로지 작은 관심. ‘기부의 일상화’를 꿈꾸는 두 기업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걸음과 기부를 잇다… ‘빅워크’

직장인 이모(28·여)씨는 출근길마다 스마트폰의 ‘빅워크’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장애 아동들에게 전동휠체어를 기부하는 캠페인에 ‘걸음’을 보태고 있다. 10m를 걸을 때마다 적립되는 건 1원. 처음엔 작은 돈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걷다보니 벌써 168만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이씨는 “매달 자동이체하는 후원은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먼저 들곤 했다”며 “돈을 낸 것은 아니지만 걸을 때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빅워크는 가장 일상적인 행동에 기부를 연결했다. 애플리케이션에서 기부 캠페인을 일컫는 ‘모음통’을 선택한 뒤 걷기만 하면 가상화폐 ‘눈’이 모인다. 10m마다 모이는 1눈은 1원이다. 하루에 1㎞를 걷는다면 매일 100원을 기부하는 셈이 된다. 목표한 걸음이 채워지면 모음통을 개설한 주체가 약속한 기부를 실행에 옮긴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이 19억원에 달한다. 30일 현재 누적 가입자는 68만명, 1주일에 3회 이상 빅워크를 사용하는 이용자는 1만6000명 정도다.

초기에는 절단장애 아동을 돕는 캠페인이 주였지만 점차 수혜 대상이 다양해졌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모음통 개설 권한을 열어주면서 제주도의 곶자왈 보존 사업, 유기견 사료 기부, 영정사진 제작 등 200여건의 다양한 기부 사업이 등장했다.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서울 중랑경찰서가 도보 순찰에 빅워크를 사용하면서 각 지역 경찰서의 참여가 늘기 시작했다. 빅워크와 함께 골목길 안전 활동에 나선 경기도 성남 수정경찰서는 현재 두 번째 모음통을 만들어 독거노인 쌀 후원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기부금은 온전히 목적 사업에 쓰인다. 빅워크의 수익은 기부 사업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캠페인 운영비다. 다만 기업이 아닌 개인이 모음통을 만들 경우 별도의 운영비를 받지 않는다. 최소 캠페인 금액도 1만원이다. 기부금 규모보다 일상에서 기부를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기부가 아닌 퍼포먼스 자체에 의미를 담은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시민 일상순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용자들은 대청봉 높이인 1708m를 상징하는 17.08만㎞를 함께 걸었다. 빅워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모음통이었다.

한완희(35) 빅워크 대표는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 기부가 있다면 더 의미 있는 연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유가 만들어낸 기적 ‘쉐어앤케어’

준호는 네 살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았다. 오랜 투병생활 탓에 18살까지도 몸무게가 20㎏밖에 되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신장 기증자를 찾았지만 준호는 웃지 못했다. 이식수술을 받을 치료비가 문제였다. 지난 4월 ‘쉐어앤케어’가 준호의 사연을 페이스북에 전했을 때 9765명이 ‘공유’로 응답했다. 그리고 2000만원의 수술비가 모아졌다. 단 12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쉐어앤케어는 소셜미디어 맞춤형 플랫폼이다. 기부 캠페인을 페이스북 이용자가 공유만 하면 공유자 이름으로 1000원이 기부된다. 그 게시물에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면 개당 200원이 추가된다. 별도의 결제 시스템은 없다. 돈은 기부를 약속한 기업에서 나온다.

2015년 처음 시작된 ‘공유 기부’에 참여한 사람은 30일 현재 50만명을 기록 중이다. 누적 기부금은 23억원을 넘었다. 쉐어앤케어를 통해 소개된 사연만 해도 260여건. 황성진(46) 쉐어앤케어 대표는 “내 돈을 들이지 않는 기부에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사회공헌 실태조사 결과 2015년 주요 기업 255곳이 지출한 사회공헌 비용은 2조9020억원이었다. 쉐어앤케어는 이 어마어마한 자금이 매번 뻔한 공익 캠페인에 쓰이는 점을 지적했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후원자를 찾아 ‘매칭’하고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려 ‘홍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업 입장에선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기부단체는 단기간에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수혜자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다른 방식의 후원을 제공받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게 클릭 한 번으로 일어나는 ‘나비효과’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사업의 진정성과 투명성이다. 쉐어앤케어 역시 기부금이 100% 당초 예고한 목적사업에 쓰인다. 쉐어앤케어 홈페이지에는 기부금이 사용된 세금계산서, 영수증, 입금 내역 등이 낱낱이 공개돼 있다. 기부의 투명성을 보증해야 대형 비영리단체 위주의 기부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면 같은 물품이 기부되는 ‘원 포 원’ 방식의 소비 기부 서비스를 추가로 오픈했다. 쉐어앤케어는 여기서 얻는 수익으로 위안부 피해자나 세월호 등 정치적 이슈가 담긴 기부 캠페인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황 대표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동시에 도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어 “경제 규모 세계 11위인 우리나라의 세계기부지수가 75위라는 건 제도의 문제다. 기부 생태계를 바꿔버리면 분명 기부 구조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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