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인생 모티브



처서가 지나고 며칠을 열대우기처럼 비가 내리더니 이제 조석으로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래서인지 지난겨울에 뜨다 말았던 ‘그래니 스퀘어 모티브’ 담요를 마저 뜨고 싶어졌다. 물론 의사는 다친 어깨 근육의 재활을 위해 손목의 움직임만 있는 뜨개질보단 전신운동을 권장했지만. 뜨개질과 바느질은 내 등단 연차와 같은 유일한 취미다.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복잡하여 생각이 꼬일 때 바늘과 실을 들고 뭐라도 만들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각은 단순해져서 명쾌한 기분을 느낀 적이 많았다. 뜨개질과 바느질은 여성의 가사노동이 특화된 ‘취미’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여성들에게 이것은 취미가 아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노동’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의 취미를 궁상맞다 여기기도 했고, 반대로 고급 뜨개실과 예쁜 퀼트 천들이 생각보다 비싸서 할 일 없는 여자의 호사취미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뜨개질, 바느질할 시간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는 게 좋은 글 쓰는 데 도움 되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조언을 함부로 하다니, 내가 남성 시인이었어도 그랬을까,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이들 중에 내 시집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내 인상이 나쁘지 않아서, 아무 말이나 해도 잘 받아줄 사람 같아서 그랬다고 좋게 생각하고 있다.

코바늘로 모티브를 뜨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모든 모티브는 언제나 한 코에서 시작해 화려한 무늬를 만들지만, 결국 모든 코를 다 버려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것도 그랬다. 모든 사건과 인연은 사소하게 시작됐지만 그것들로 파생된 좋은 것, 좋지 않은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놓아야 비로소 내 인생의 무늬를 만든다. ‘살며 사랑하며’에 매주 칼럼을 보내던 1년4개월 동안. 시 쓰기와는 전혀 다른, 잊지 못할 모티브를 하나 완성한 것 같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주말마다 아침을 챙겨준 나의 남편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이은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