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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삶은 여행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내 음악 재생 목록에는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곡 중 하나가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다. 주말에 서재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었더니 딸이 한마디한다. “또 그 노래야!” 아이돌 그룹 원오원의 강다니엘에 빠져 있는 여중생에게 ‘삶은 여행’은 제3세계 음악처럼 지루하게 들렸으리라.

요즘 이 노래를 더 많이 듣게 된 건 영화 ‘파리로 가는 길’ 때문이다. 돈 잘 벌고 유명한 영화제작자 남편과 프랑스 칸으로 휴가를 왔지만 귀가 아파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아내가 남편 동료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향해 가는 짧은 여정을 인상주의 회화처럼 화사하게 그려낸 영화다. 극적인 스토리도 없고, 짜릿한 반전도 없는 이 영화의 여운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스크린에 스쳐가듯 흘렀던 프로방스의 보랏빛 라벤더와 생 빅투아르산의 이미지는 머리에 새겨지듯 박혀버렸다. 주황색 멜론을 홑이불처럼 덮고 있는 하몽이 하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장면은 지금도 불쑥불쑥 떠올라 침이 고일 정도다. 무엇보다 프랑스 남자 자크가 미국에서 온 여자 앤의 눈을 보며 “Are you happy?”라고 묻던 대사는 귀에서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생선 비린내가 나는 “당신은 행복합니까?”인데도 말이다.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건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라는 노랫말이 가슴에 맺혀서다. 눈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일을 겪으며,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삶일지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라고 이 노래가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파리로 가는 길’의 여주인공 앤은 태어난 지 39일 만에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들을 20년 넘도록 가슴에 품고 산다. 남편의 약과 양말을 챙겨주지만, 자신의 재능은 챙기지 못한 채 살다가 파리로 가는 길에서 자기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묘하게 겹쳐진 노래와 영화의 메시지는 하나로 모아졌다. 상처를 딛고 일어나 진짜 자기를 찾아 길을 떠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노래도 영화도, 우리 인생도 어쩌면 모두 다 여행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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