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5주년] ‘사드’ 위기로 시험대 오른 韓·中… “소통·신뢰 쌓아야”



한국과 중국이 오는 24일로 수교 25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양국의 물적·인적 교류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성장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47배, 수입은 23배 늘었고 이에 따른 교역도 33배나 급증했다. 정치·외교 등 분야에서는 아직도 각종 민감한 현안을 놓고 수시로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경제 분야의 과도한 대중 의존도로 한국은 중국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제와 함께 한·중 관계의 미래를 열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992년 8월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양국은 정식 국교를 수립했다. 외교 관계는 수교 당시 ‘우호협력 관계’에서 98년 ‘협력동반자 관계’에 이어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등으로 빠르게 격상됐다. 하지만 고비마다 돌출된 사건 하나에도 갈등 관계로 돌아서는 등 양국 관계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가 결정된 이후 한·중 관계는 최악을 맞고 있다. 중국은 외국과의 수교 기념일을 맞아 5주년, 10주년 단위로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는 게 관례다. 5년 전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식 때도 시진핑(習近平) 당시 국가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하게 한·중 공동 기념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25주년을 맞는 올해는 공동 기념식을 개최하자는 요청을 중국이 거부해 베이징에서 한국 따로, 중국 따로 별도의 행사를 치르게 됐다. 오늘의 한·중 관계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다.

앞서 2000년에는 한·중 간 마늘분쟁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3년간 30%에서 315%로 대폭 인상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중단하는 무역 보복에 나섰다. 결국 한국은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기존 수준으로 낮추고 중국이 보복 조치를 철회하면서 분쟁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드로 인한 양국 갈등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드 문제에는 한·중 양국뿐 아니라 북한 핵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20일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는 독립 관계가 아니라 북한과 미·중 관계에 종속돼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드의 경우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한 방어 차원의 안보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은 동북아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미·중 경쟁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 공공외교포럼에서 지앙위애춘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세계경제 및 발전연구소 소장도 “사드는 미국 MD(미사일방어) 체계의 일부분으로,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사드의 요격 기능이 아닌 정찰 시스템”이라며 “중국의 군사 시스템을 정찰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중국 안보 전략에 큰 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그만큼 접점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북·중 관계를 보는 양국의 시각차도 크다. 중국은 북·중 관계를 과거 혈맹이 아닌 ‘정상국가’ 간 관계로 규정한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5년이 넘도록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북·중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중국 외교 관계자들은 “북한은 우리도 통제할 수 없다”면서 대북 제재에서의 ‘중국 역할론’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국의 대북 편향성을 의심하고 있다. 북한으로 원유 공급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중국이 완강히 반대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2011년 북한이 일으킨 천안함 폭침 사건의 경우 명백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 편들기로 일관하던 중국과 근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한·중 양국이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앞으로 50년, 100년 뒤의 한·중 관계를 결정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쉽지 않겠지만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이익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양국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대외경제무역대 외국어학원 쉬융빈 원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국가 간에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냉정하게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쉬 원장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어느 나라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 핵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핵 폐기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익공동체”라면서 “이해관계가 같기에 시간이 걸려도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갈등이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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