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5주년] “한국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중국도 두려워할 것”

김동길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가 지난 17일 베이징대 연구실에서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중국과 북한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교 2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때문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양국 사이에는 언제나 북한이 끼어 있었고,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중국 베이징대 유일한 한국인 교수이자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으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과 김동길(54) 교수를 만나 최근 정세와 한·중 관계의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중국과 북한에 대해 잘못 아는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와의 만남은 지난 17일 고풍스러운 베이징대 인문동 건물들 속에 자리 잡은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한국은 중국에 목줄을 내줬다.

김 교수는 수교 전후 한국의 대기업에 다녔다. 수교 직전 ‘공산국가’인 중국 선전시 여행을 할 때에는 안기부에서 일주일 동안 보안교육을 받던 때다. 막상 중국을 보니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또 기회의 나라였다. 한국에 돌아와 사표를 내고 중국에서 사업을 했다. 실패를 겪으면서 중국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은 어떤 나라였나.

“중국은 관시(關係·인맥)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FM(규정)’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관시만 찾는 사람들은 다 망했다. 한국 대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성공한 이유는 규정대로 했기 때문이다. 관시는 도움은 되지만 필수는 아니다.”

-한·중 관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교역량은 절대적으로 늘었지만 정확히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 한국 기업들은 중국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소비재를 파는 수출은 급격히 줄고 있다. 한국 제품에 대한 프리미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제품의 품질은 높아졌고 한국 제품의 가격은 여전히 높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자동차다.”

-사드로 인한 경제 보복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교역의 질이 악성으로 변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다른 나라에 자신의 목줄을 쥐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한국이 중국 경제에 너무 의존적인 상태가 됐다. 사드 보복으로 관광 중단 등이 이뤄지고 있지만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중국의 농산물을 한국에 수출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상상도 못할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교역을 끊어도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정치·외교적으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류가 있다면 어느 정도 한국 제품을 팔 수 있다. 하지만 사드로 인해 한류가 희석된 데다 반한 감정까지 생기고 있는 마당에 지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

한·중 관계는 내리막 상태

김 교수는 수교 직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 집권 당시를 한·중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냉각기를 거쳐 이명박·박근혜정권 동안 한·중 관계는 악화됐다. 동북아 문제의 핵심인 북한 문제를 놓고 한·중의 이해관계 일치 여부에 따라 양국의 친소(親疏) 관계가 좌우됐다는 분석이다.

-왜 DJ 때가 가장 좋았나.

“수교 초기 한국은 중국에 막연한 희망을 가졌고 중국은 한국을 동경했다. 중국인들은 모든 게 한국이 중국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한국 프리미엄’이 있던 시기다. 최정점은 DJ 시기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한국이 쥐었다. 동북아 문제는 결국 북한 문제다. 중국의 전략적 목표는 한반도 안정이다. DJ 당시가 중국이 바라던 바로 그런 시기였다. 중국도 북한 문제의 한국 주도권을 인정했다.”

-노무현 정권도 DJ 정책을 계승하지 않았나.

“그런데 미국이 끼어들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직접 관련이 없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북한과 미국이 직접 갈등하던 시기였다. 한·중 관계는 우리가 북한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가질 때만이 긴밀해진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동북아 균형자론’(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이 아닌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균형자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논리)을 내세운 이후 한·중 관계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회복됐다. 이후 이명박정권의 미국 일변도 외교가 한국을 낭떠러지로 몰았다. 그 당시 북한과 중국 사이 수뇌회담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고, 김정일이 중국에 가장 많이 왔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는 분위기가 좋았다.

“박근혜정권은 출범 초기 중국에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로 들어가지 않고 사드 도입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이 미국의 대중국 고립정책이 강화되던 2015년에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서방에서는 다들 불참했기에) 당시 참석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번듯한 나라였다. 중국에 생색내고 얻어내야 할 것을 얻어야 했지만 당시 박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선택했다’는 식의 선전에만 열을 올렸다. 결국 사드 배치로 인해 최악의 시기를 맞이했다.”

사드 문제를 풀 솔로몬의 해법은?

-문재인정부에서는 한·중 관계가 달라질까.

“최악의 한·중 관계를 복원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앞으로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사드 문제 해결이 과제다. 중국은 문재인정부에 대해 최소한 한국이 사드 배치를 막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은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했다. 한·중 갈등도 조금 풀리려는 조짐을 보이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중국 일반인들은 아직도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왕 배치된 사드 시스템을 한국이 운영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레이더 탐지 정보는 미국에 주더라도 중국에는 ‘북한만 관측할 것’이라고 보장해야 한다. 미국에는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믿음을 주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도 이해할 것이다.”

북한은 원유 없이 버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중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필요하긴 하지만 가까워질 수 없다. 과거 북·중 혈맹 관계는 지도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국제사회의 ‘트러블 메이커’가 된 것을 중국이 조장하거나 묵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중국도 북핵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끊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원유 없이도 버틸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북한의 석유 소비량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보통 북한이 한 해 100만∼150만t의 석유를 소비한다고 생각한다. 150만t이면 1000만 배럴이다. 한국의 한 해 소비량은 12억 배럴이니 북한이 한국의 1%도 안 되는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정도로는 100만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 최소 3%로 잡아도 북한의 석유 소비량은 3000만 배럴이다. 중국은 북한에 연간 50만t(약 35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해도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 북한은 이미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기술이 보편화돼 있다. 석유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얘기다. 일본은 2차대전 당시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흥남석유단지를 조성했다. 일제 패망 후 이 단지는 고스란히 북한에 남았다.”

한국 이익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구조를 우선 만들고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핵은 인지하는 수준에서 인정하고 북핵 추가 실험과 미사일 추가 발사를 막은 뒤 북한을 국제사회 속에 끌어들여 서서히 변화시켜야 한다.”

-전쟁 방지가 최우선 목표여야 하나.

“한국의 목표는 통일이 아니라 전쟁 방지여야 한다. 전쟁 방지를 한 뒤 남북 화해와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그 다음이 통일이다.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하루에 50만∼100만명이 죽을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라고 했던 2차대전 때도 하루 사망자가 2만5000명이었다.”

-바람직한 한·중 관계는.

“가장 먼저 한국의 이익을 생각하는 외교 전략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때만 중국도 한국을 두려워하고 한국을 존중할 것이다(그의 이 말에는 과연 사드 배치 결정이 한국의 이익을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배어 있었다). 미국과는 군사안보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북한을 적으로 가정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제2, 제3의 사드 문제가 계속 생겨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한·미동맹은 인정한다. 미국보다 미국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 정책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중국보다 중국을 더 걱정하는 사람도 안 된다. 우리 이익을 위해 미국이나 중국에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김동길 교수는

김동길 교수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동북아 국제관계사와 중·소 관계사, 북·중 관계 및 한반도 역사를 연구해 왔다. 하버드대 대학원 특별학생, 러시아 과학원 방문학자, 우드로 윌슨센터 공공정책학자 등을 거쳤다. 2007년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자신이 만든 한반도연구센터의 소장직도 맡고 있다. 국제 학계에 4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베이징=글·사진 맹경환 베이징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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