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깔창 생리대’ 그후 1년… 소녀의 아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서울 인사동 인근에 생리대 가격인상에 반대하는 뜻에서 붉은 물감을 칠한 생리대를 붙인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국내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생리컵’.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A양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느 날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 당혹스러웠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빠듯한 형편임을 알기에 아버지에게 1만원 안팎의 생리대를 사 달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궁리 끝에 A양은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했다.

지난해 여름 국내 생리대 1위 업체인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인터넷에 A양의 사연이 올라왔다. 비싼 생리대를 구입하기 버거운 저소득층 소녀들은 ‘신발깔창’ ‘수건’ ‘두루마리휴지’ 등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국민일보가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하자 지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저소득층 소녀들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준 ‘깔창 생리대’ 논란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리대 지원사업을 시행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생리대 가격은 그때보다 비싸졌다. 생리대 지원 정책도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깔창 생리대’ 그 후 1년의 변화를 짚어봤다.

여전히 가장 비싼 한국 생리대

생리대 가격의 적정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리대값은 개당 331원으로 일본·미국(181원), 프랑스(218원), 덴마크(156원) 등에 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비싸다. 이유는 생리대 생산 비용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경우 기업이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기 쉬운 독과점식 가격 결정 구조에 있다. 국내 생리대 시장 점유율(2016년 기준)은 유한킴벌리 57%, LG유니참 21%, 깨끗한나라 9%, 한국P&G 8%로 4개 업체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이 된 두 제품만 가격을 올리지 않았을 뿐이다. 나머지 품목은 ‘리뉴얼'이란 명목에 최대 17.4%, 평균 7%대로 가격이 인상됐다. 생리대 153만 패드를 기부하고 기존 제품보다 30% 저렴한 저가형 생리대를 출시하며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소비자 부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유한킴벌리는 올 들어 생리대 가격을 동결했던 기존 제품의 생산은 줄이고 가격을 올린 신제품 생산량을 늘려 공급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측은 “기존 제품 중 고객 선호도가 높은 제품은 계속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저가형 생리대와 기부만으로 사회적 약속을 다 이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청소년 건강과 복지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생리대값 거품 논란과 관련해 생리대 제조사 3곳을 직권 조사했다. 이들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봤지만 국정농단 사태 및 정권교체와 맞물리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저가품 확대, 생리컵 도입

‘깔창 생리대’ 논란에 출시된 저가 생리대는 시장에서 점차 인지도를 확대해가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1∼5월 전국에서 판매된 2000∼3000원대 저가 생리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 생리대 시장은 저가 수입품이 일부 있었지만 고품질 선호도가 높아 판매는 미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시된 국산 저가 생리대는 합리적 가격과 품질로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반기에는 LG유니참도 30∼40% 가격을 낮춘 중저가 생리대를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대안으로 ‘생리컵’이 거론되고 있다. 인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낼 수 있는 실리콘 재질의 여성용품을 말한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당 2만∼4만원대로 저렴해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대중화됐다. 국내에선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매 허가를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지난달 9일 식약처는 “생리컵 안전성 인증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올 하반기에는 정식으로 판매될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생리컵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청소년에게 낯선 생리컵 사용법을 알리고 거부감을 줄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 성향과 신체 상태에 따라 생리제품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산의 50%는 복지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50%(서울은 70%)는 지자체가 담당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전국에서 청소년 29만명이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적사항을 신청서에 기재해 보건소에 제출하거나 이메일로 자격을 확인받으면 1인당 3개월 분량의 생리대를 지급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직접 보건소에 가서 받아야 했지만 대리인 수령과 택배 배송도 가능해졌다.

복지부는 중위소득의 40%(4인 가구일 경우 175만6570원) 이하인 의료·생계급여 대상 가정의 11∼18세 청소년과 지역아동센터 등 시설 이용자를 대상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대상에서 제외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부모가정, 차상위계층 청소년 대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속되는 ‘생리대 기부’

‘깔창 생리대’ 논란이 인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기부’는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 기업, 사회단체 등이 생리대를 기부하고 나서면서 생리대 업체가 특수를 누린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될 정도였다. 생리대 대리점을 운영했던 업계 관계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건 좋지만 생리대 기부에 힘입어 가격 인상이란 본질적 문제가 잊혀지고 생리대 업체만 특수를 누리는 것 같다”고 했다.

생리대 지원사업의 안정적, 지속적인 시행을 위해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올 초 발의했다. 김 의원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만 생리대를 지원할 경우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위생 필수품인 생리대를 화장실에 휴지 제공하듯 보편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경’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됐다. 여성들은 지난해 7월 서울 도심에서 생리대 가격 인하와 생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하며 ‘생리대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물감을 칠한 생리대와 여성 속옷을 벽에 붙이고 “생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비싼 가격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월경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가 단연 화제였다. 생리와 생리용품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깔창 생리대’ 논란과 더불어 생리대를 공공재로 인식하자는 메시지를 던져 큰 호응을 얻었다. 김보람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상품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과 과정은 그 구성원들의 생각과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글=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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