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로보트 태권V' 턴테이블 ‘토마토마’ 뜨는 이유



엄마 옷장에서 꺼낸 듯한 롱스커트와 '빵집을 누비던 추억 속의 나팔바지'로 잔뜩 멋을 낸 커플이 흑백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드라마의 회상 장면이 아니다. 흑백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관들에서 주말마다 펼쳐지는 장면이다. 스마트폰으로도 화질이 뛰어난 컬러사진을 찰칵찰칵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흑백 사진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흑백전문 사진관인 ‘연희동사진관’을 2014년 오픈한 김규현씨는 6일 “주말이면 20∼25커플이 흑백 기념사진을 찍으러 온다”고 말했다. 흑백필름 사진은 사진을 찍고 현상한 필름을 루빼(사진 확대용 기기)로 보면서 고른 다음 다시 인화해야 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뒤 찾기까지 1주일 이상 걸리고, 세 번은 사진관에 들러야 한다. 김씨는 “20, 30대들은 바로 이런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특이한 것으로 받아들여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흑백사진처럼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담은 추억의 상품들이 20, 30대 디지털족들을 유혹하면서 유통업계는 ‘추억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1970, 80년대 토종 캐릭터 피규어를 제품화하는 ‘추억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탄은 ‘로보트 태권V’다. 로보트 태권V는 1976년 김청기 감독이 제작한 한국 최초 장편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다. 롯데마트는 7일까지 40㎝ 크기의 로보트 태권V를 예약 판매하고 있다. 예약을 받기 시작한 지난달 24일 하루 만에 600여개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다. 김경근 롯데마트 토이저러스MD는 “예약판매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물량이 판매된 것은 국내 피규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1970, 80년대 토종 캐릭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화해 ‘7080세대’에게는 추억을, 자녀들에게는 토종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디지털 오디오가 등장하면서 고물상에 넘겼던 LP판과 턴테이블을 다시 찾는 이들이 크게 늘자 홈쇼핑이 직접 판매에 나섰다. CJ오쇼핑은 지난 3월 31일 새벽 2시에 한정판 LP판 1장과 ‘사운드룩 LP 턴테이블 SLT-5080’을 세트 판매했다. 이 방송에서 목표치보다 40%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CJ오쇼핑 e트렌드상품개발팀 김영빈 MD는 “예상 외로 LP판으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전혀 없거나 익숙하지 않을 디지털 세대인 30대들이 전체 구매자의 25%를 차지하는 등 LP판과 턴테이블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의점도 추억 소환에 나섰다. CU는 1990년대 초반 등장해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단종된 추억의 제품 ‘머그컵 라면’을 지난 6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봉지라면이나 컵라면과 달리 머그컵에 면을 넣고 뜨거운 물(200㏄)에 3분 정도 익혀 먹는 라면이다. 이태훈 BGF리테일 해외소싱TFT팀장은 “머그컵 라면은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며 기존 일반 라면에 식상함을 느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줘 사랑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세븐일레븐에선 11년 만에 돌아온 아이스크림 ‘토마토마’가 하루에 2만여개씩 팔려나가고 있다. 토마토마는 해태제과가 2005년 출시했다 1년 만에 생산을 중지한 아이스크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릴 때 맛봤던 토마토마를 다시 먹고 싶다’는 요구가 꾸준히 이어지자 해태제과가 지난 3월 재출시했다.

행복을 중시하는 ‘욜로(Yolo)'족들이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4만∼5만원짜리 ‘망고 빙수’를 즐기는 요즘이지만 한 대접에 4000원 하는 옛날 빙수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프리미엄 떡볶이집을 표방하고 있는 ‘청년다방’은 팥과 인절미만 들어간 추억의 팥빙수를 내놨다. 청년다방 본사 마케팅팀 김미선 주임은 “옛날 빙수가 기대 이상으로 팔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비주얼에 흥미를 느꼈는지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입소문을 내주고 있는 젊은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