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건강

[김양균의 현장보고] 촌각을 다투는 SOS … 골든타임 5분 연장시킨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소방관들은 환자의 증세를 확인하고 그 정보를 기록해 구급대에게 전달한다. 전 과정은 까다롭고 신중을 요한다.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고요? 의식 있으세요? 일단 거실로 환자분을 옮기시겠어요? 호흡은 규칙적인가요? 전화 끊지 마세요!" 김미영 소방관의 목소리가 일순 커진다. 수화기 너머 다급한 신고자의 심장박동이 전해오지만, 김 소방관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리는 동시에 또 어디선가 경각에 달린 누군가의 긴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은 늘 생사가 교차하는 곳. 사경을 헤매는 이들이 찾는 SOS. 이 모든 순간은 단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 이곳은 생명 구호의 최일선인 서울종합방재센터, 119구급상황관리센터다.

섭외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온종일 지켜보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오 마이 갓’이란 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취재 약속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됐다. 지난달 27일 충무로를 빠져나와 걷길 20여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위치해 있는 옛 안기부 건물은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셔츠가 땀으로 흥건해질 무렵,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소방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다. 구슬땀을 흘리며 도착한 서울종합방재센터의 입구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간단한 출입등록을 거쳐 지하로 내려가자 일순 눈앞의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본 나사(NASA)를 방불케 하는 119 소방관들의 대단위 전화상담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또하나의 종합의료센터… 긴장감 팽팽

119구급상황관리센터(센터장 이대우)는 응급의학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로 구성된 구급지도의사를 포함해 의료지도 요원(9명)과 구급상황관리사(13명) 등으로 짜여있다. 이곳에선 119 신고자에 대한 질병상담, 병원정보, 구급일반 기술상담·구급상황관리·구급대 의료지도, 일반 의료상담이 이뤄진다. 한마디로 119내 ‘종합의료정보센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24개 의료기관에서 온 전문의 52명이 번갈아가며 주야를 지킨다. 간호 소방관과 응급구조사 등 구급대원들은 이러한 전문의의 조언 하에 구급 활동을 벌이게 된다.

정일상 구급지도의사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만 10년을 보냈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할만합니다.” 응급의학 전문의인 그의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건만, 아직 그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구급대원 교육과 의료지도가 그의 몫. 119에서 보낸 세월 만큼 에피소드도 많다. “산악 사고가 나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구급헬기의 출동 여부가 결정되거든요. 1회 출동 비용만 수백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욕을 먹을 때도 있어요(웃음).” 욕이라니! 실상은 이렇다. 경미한 불편을 호소하는 환자 중에 헬기를 꼭 요청하는 신고자가 있단다. 그냥 헬기를 타보고 싶어서라는 것. 이 경우, 구급대원들은 헬기 대신 들것이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환자를 달래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화재 사고를 비롯해 재난 현장으로 출동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넘어야 할 산이다. 아비규환의 현장은 부족한 것 투성이다. “병원과 달리 현장은 인력과 장비가 너무 부족하거든요. 선진국에 비해 아직 우리 소방관들의 현실은 악전고투하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시스템 정비가 미비한 거죠.”

생사의 경계에서 때때로 의료법은 119 구급대원의 팔·다리를 묶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심정지 등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를 맞닥뜨릴 경우, 환자에게 필요한 약물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인명 구조를 위해서 이뤄진 처치가 만에 하나 의료 사고로 이어지면, 구급대원이 보호받을 법적 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때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일부 지자체에서 한시적으로 약물 처치를 허용한 사례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예외적’ 상황일 뿐, 법 개정은 아직 요원하다. 정 전문의는 “이런 상황을 볼 때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구급차 도착까지 공백 메워주기 역할

정 전문의의 이야기를 한참을 듣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란 게 있다면서요?” “안 그래도 왜 안 묻나 싶었어요(웃음).” 센터가 올 초부터 시행하고 있는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생각을 비튼 아이디어다. 스마트폰의 영상통화로 응급환자에게 설명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영상 통화로 심폐소생술 등을 일러주는 과정은 인지 효과 뿐만 아니라, 생사의 ‘골든타임’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시범사업을 거쳐 정식 시행 8개월여. 효과는 괄목할 만하다. 심정지 225건, 응급질환 265건, 사고부상 49건 등 총 539건의 성과를 기록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통상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5분 남짓이 소요된다. 이때 만일 환자가 방치되면 추후 뇌손상 등이 올 수 있다.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이러한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게 이대우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사고 전과 동일한 일상생활을 누리는데있어, 스마트영상 응급처치가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나 데이터 통신 속도 등을 미뤄볼 때 이는 우리만의 ‘스페셜한’ 응급구조 방법이 될 수 있다. 도서 산간이나 오지 등 의료소외 지역에서 유용해 보였다. 현재 서울에서만 실시하고 있지만, 차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난관도 적지 않다. 인력 활용 문제는 도통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센터의 전체 응급 상담 중 15%를 차지한다. 더 많이 적용하고 싶어도 ‘손’이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전화상담이 폭주하는 오후와 야간에는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를 엄두도 못 낸다. 3명의 전담인원으로선 몰려드는 전화 상담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반응은 어떨까? 인기만발이다. 실제 전국 각지의 소방본부로부터 견학을 오는 경우가 많다고. 이 날도 한 무리의 소방관들이 찾아왔다. 소방청도 스마트영상 응급처치의 확대 도입을 고민 중인 것 같다고 이 센터장이 귀띔했다. 나름의 자리를 잡기까지는 웃지 못 할 우여곡절이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부딪치며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맨땅 헤딩하듯 제도 구축… 이젠 유명세

다만, 시스템이 아쉽다. 신고자의 전화를 받으면 영상 처치의 활용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면 전화를 끊고 신고자에게 태블릿PC로 다시 영상전화를 거는 식이다. 받지 않는 경우나 영상 통화에 익숙지 않아 아예 매뉴얼을 만들기도 했다. 스마트폰 기종에 따라 태블릿PC연결의 제한도 골치 아프다. 영상통화에 따른 데이터 소모는 통신을 끊게 만드는 복병이 되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전활 하면 응급상담시 버튼 하나로 영상통화가 전환된다면 좋을 텐데, 끊고 다시 전활 걸어야 해서 답답합니다. 스마트영상 응급처치시 데이터가 든다고 하면, 그냥 ‘목소리로 하라’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아쉬워했다.

언제 전화가 많이 올까? 평일? 주말? 정답은 ‘병원이 문을 닫는 주말’이다. 119는 365일 24시간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긴급을 요하는 전화가 폭주할 때면, 소방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 병원이 진료를 하고 당직 전문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이들의 주요한 임무다. 한창 바쁠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식사 때를 놓친 밥은 5분 만에 후다닥 해결하는 건 부지기수. 3교대로 주간(9:00∼18:00)과 야간(18:00∼9:00) 근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소방관들의 어깨에는 늘 피곤함이 붙어있다.

소방관들은 말이 빠르고 정확했다. 목소리는 대체로 컸다. 이유가 궁금했다. 김미영 소방관은 “신고자들은 심리적으로 다급하고 불안한 경우가 많아요. 중요한 것은 덩달아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신고자의 마음을 단기간에 가라앉히려면 일부러 강한 톤으로 말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설핏 싸우는 것처럼 비쳐질 순 있지만, 흥분한 상대를 가장 빠르고 강하게 안정시키는 방법이죠.”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왔다. 하루 잠깐 기거한 기자는 전화 소리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환자의 증세를 확인하고 이러한 정보를 기록해 구급대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까다롭고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환자별 상황에 맞는 응급처치도 이들의 역할이다. 세심하고 꼼꼼한 중간역할은 필수다. 환자와 신고자는 거듭 구급차가 언제 도착하느냐고 재촉하기 마련이다. 이들을 안정시키는 것도 이들이 도맡는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면 입이 바짝바짝 타고 목에선 피맛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김 소방관은 아무 말 없이 씩 웃고는 다시 본래의 업무에 열중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