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이토록 험난한, 싱글 라이프 싱글 레이디


 
1997년 여성민우회 창간식. “여성의 힘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전여성의 단결로 여성해방을”이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1차 수요집회 현장. 정대협은 1990년 37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창립됐다. 정대협 창립 또한 1980년대부터 시작돼 90년대 만개한 여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필자 제공



 
공지영 작가


2015년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후 터키에서 실종된 김모군은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시대는 남성이 성차별을 받는 시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이후 ‘페미니스트’가 온라인 검색어 실시간 1위에 오르면서 지난 십 몇 년 간 자취를 감췄던 페미니즘은 갑자기 대중들 앞으로 다시 불려나왔다.

거기에 어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가 ‘IS보다 위험한 무뇌아 페미니스트’라는 글을 쓰면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극단적 증오와 적대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런 식의 극단적 혐오와 공격은 사실 1999년 군가산점 폐지 논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지난 10여년 간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도배했던 ‘꼴페미’ 혹은 ‘페미년’과 같은 말들은 여성가족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여성 일반에 대한 적대감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이는 대표적인 여성 혐오 표현이 됐다.

그러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여성혐오와 여성비하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잘못도 없이 욕받이가 돼버린 여성들이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을 자각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과 대형서점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페미니즘 서적 코너, 문단 내 성폭행에 대응하는 여성 작가와 활동가들의 연대 등은 페미니즘 운동이 다시 새롭게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이 이전에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처음으로 대중적 공감을 얻고 확산됐던 것은 90년대였다. 그것은 여성 억압의 현실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전개됐던 8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결실이었다. 90년대 여성문학의 황금기는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과 함께 그렇게 도래했다. 그 시작을 알린 소설이 바로 93년 발표된 공지영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하 ‘무소의 뿔’)다. ‘무소의 뿔’은 비록 통속적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것은 또 거꾸로 이 소설이 많은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무소의 뿔’은 새로운 여성 주체의 탄생을 대중적으로 선언하는 일종의 매니페스토(선언문)였다.

이 소설은 94년 연극으로 만들어져 7개월간 공연됐으며 95년에는 영화(포스터)로도 만들어져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로 인해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대중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으며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그러나 이런 페미니즘 문학의 대중적 성공은 많은 반(反)페미니즘적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심지어 이문열은 장편소설 ‘선택’(97)에서 몇 백 년 전에 죽은 사대부 종부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비난한다.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

‘무소의 뿔’은 중산층 기혼여성들이 가정에서 겪는 문제를 박완서나 오정희 등의 선배작가와는 다른 감각과 감수성으로 다룬 페미니즘 소설이다. 작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주장하고 여성 억압의 뿌리를 가부장제에서 찾으면서 여성학 이론과 인문학적 교양을 배경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사유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공지영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변혁을 열망했던 ‘386세대’ 작가다. ‘무소의 뿔’에 등장하는 혜완 경혜 영선은 이러한 작가의 세대적 체험이 투영된 전형적인 386세대 여성이다. 그들은 20대 중반에 결혼한 뒤 학창시절과는 다른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제적인 여성 억압의 현실에 당황한다. 이 세 여성이 결혼 이후 겪는 혼란의 중심에는 여성의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현실 사이의 괴리가 놓여 있다.

“한때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고 꽤 칭찬도 받았던 괜찮은 여학생”이었던 혜완 경혜 영선은 결혼 이후에는 더 이상 사회에서 ‘괜찮은 직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로서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도 못한다. 한때 유명한 아나운서였던 경혜는 부유한 의사와 결혼한 뒤 자기 일을 포기하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로 고통 받는다. 결국 자신도 맞바람을 피우며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다.

영선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남편을 뒷바라지해 그를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성공한 만큼 더욱 초라해진 자신의 현실을 견디지 못한 채 자살한다. 혜완은 또 어떤가. 그녀는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된 자신을 견디지 못해 재취업을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결국 남편과 이혼한다. 그리고 이혼 후엔 홀로 서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때문에 갈등한다.

이렇듯 ‘무소의 뿔’은 연애와 결혼을 둘러싸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의 서사이자 사회적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성의 불안한 탐색의 서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여성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386세대’ 중산층 여성의 일상적 경험의 영역에만 국한해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여성문제란 사회문제의 일부로서, 단순히 남성과 여성 간의 성적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좀 더 복합적인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연애와 결혼, 임신과 출산, 양육 등과 같은 여성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성차별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대학 졸업 후 전업주부와 직장여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90년대 여성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특히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는 성폭행이 될 수 있다는 소설 속 주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혜완은 결혼 후 남편 경환과 외식을 하다가 우연히 대학 동창생들을 만난다. 오랜만의 만남에 자리가 길어지자 경환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부인이 남자들 앞에서 히히덕거리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혜완을 벌주기 위해 그녀의 옷을 찢고 뺨을 때린 뒤 다리를 벌려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한다. 이 순간 여성은 남성의 분노와 처벌 욕망을 쏟아내는 대상, 즉 소유물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혼자서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까부는 기집애는 맛을 좀 봐야” 한다는 식의 남성의 폭력적 사고방식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임을 폭로한다. 가장 친밀한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폭력이야말로 남성의 지배욕과 소유욕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대학에서 여성해방 이론을 공부하고 대중문화를 통해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점쳤던 90년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러한 남녀평등의 관념이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허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혜완은 영선의 자살을 계기로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그랬다. 영선은 그 말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했었다. 경혜처럼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혜완처럼 아이를 죽이기라도 해서 홀로 서야 했었다. 남들이 다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그냥 잘하려면 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일찌감치 버려야 했었다. 그래서 미꾸라지처럼 진창에서 몸부림치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배운’ 여자 영선의 비극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그녀가 의식적으로는 여성에게 부과된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가부장제적 사고방식에 순응하는 모순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혜완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어차피” 남성 중심적인 세계는 변하지 않으니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경혜의 현실타협적인 길도 아니다. 또 그것은 “그래도” 여자라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영선의 관습적인 길도 아니다. 그것은 “절대로” 여성억압적인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외톨이”의 삶, 즉 완벽한 싱글 라이프다.

변혁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안락한 중산층 가정을 뛰쳐나온 80년대 학번 여대생은 결혼 후에 다시 가부장제적 차별이 일상화되고 만연한 ‘스위트 홈’을 뛰쳐나와 완벽한 혼자가 된다. ‘무소의 뿔’은 바로 그 지점에서 종결된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 공동체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자기 서사를 쓰게 된 여성은 그 후 과연 어떻게 됐을까? 공지영이 싱글 라이프를 선언한 지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다. 지금 여성의 싱글 라이프는 페미니즘적 실천 혹은 새로운 주체의 선언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울 필요도 없는,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사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오래 전의 선배들과 달리 이제 불가피하게 싱글이 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여성들이 맞닥뜨린 것은 광범위한 여성 혐오에 맞서는 싸움이라는 새로운 과제다.

공지영은 동시대 이슈에 대한 예민함이 강점… 독자의 열렬한 지지 받아온 작가

공지영(54)은 1988년 ‘창작과비평’에 단편소설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87년 부정 개표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대학 시절의 학생운동 경험과 졸업 후의 노동운동 경력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89)를 비롯해서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91) ‘고등어’(94) 등에 투영되었다.

특히 ‘고등어’는 후일담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문단에서 핫이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94년에는 ‘고등어’ 외에도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93) 세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면서 공지영은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소위 식모라 불렸던 한 여성의 팍팍한 삶을 60년대 풍속 안에서 녹여낸 ‘봉순이 언니’(98)가 큰 인기를 얻는다. 특히 이 책은 2001년 MBC방송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 소개되어 그해와 다음해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이후 작가는 자신에 대한 악성루머에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긴 침묵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7년 만인 2005년에 사형제도 문제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출판했다. 그 뒤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각기 성이 다른 세 아이들과의 일상생활을 다룬 ‘즐거운 나의 집’(2007)이 출간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도가니’(2009)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지영 소설이 대중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문단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특히 이야기에만 집중할뿐 문학성 있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사회적 사건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깊이 있는 통찰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 등이 있다.

그러나 생전에 박완서 작가는 공지영 소설에 대해 “공지영의 소설이나 산문은 평론가의 도움 없이도 뭔 소린지 알아먹게 하는 문장이다. 사생활에 대해 내숭 떨지 않는 정직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 ‘딸에게 주는 레시피’ ‘시인의 밥상’ 등의 에세이와 단편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2017)를 발간했다. 단편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제35회 이상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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