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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시가 사랑받는 이유? “오늘은 잘 모르겠다”

신작 ‘오늘은 잘 모르겠어’를 출간한 시인 심보선이 26일 서울 여의도 한 건물 외벽에 기대 서 있다. 김지훈 기자




사람들이 왜 당신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오늘은 잘 모르겠다”며 엷게 웃었다. 그의 새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표지)는 이례적인 관심 속에 초판 5000부에 이어 일주일 만에 5000부를 더 찍어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로 유명한 시인 심보선(47)을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감정이 응축된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해 (일정한) 시적 화자의 마음 풍경에 도달한다고 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초현실적이기도 하고 아니면 사사롭기도 하고. 시 속에 제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관계’ 속에서 내가 나오는 거지요. 저는 때로 물러나기도 하고 다가서기도 하면서….”

표제작 ‘오늘은 잘 모르겠어’에는 이런 시작 태도가 잘 드러난다.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오늘은 잘 모르겠어.’ 시가 묘사하는 내면은 누구라도 경험했을 법한 순간 같다. ‘나 이제 무정도 다정도 아닌 병에 걸려/…/그래 나 미쳤다 시비나 걸고 싶고/…/손잡고 영화나 보러 가자 애원하고 싶고.’(‘무정과 다정’ 중)

“전 일상을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시로 쓰는 ‘아마추어’에요.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문학이든 결국 평범성에 대한 사유이고 글쓰기에요.” 이런 생각이 공감 큰 시를 쓰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긴장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건 아니다. ‘말년의 양식’ ‘어쩌라고’ ‘브라운이 브라운에게’ 등은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시인은 체험으로부터 어떤 시적 거리를 확보한다. 달관과 체념 사이 어디쯤의 마음을 드러낸다. 때론 유머(‘강아지 이름 짓는 날’)로, 때론 사실(‘근육의 문제’)로. 50여 편의 시에는 시대의 우울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모여 편히 마음을 나눌 공간이 있나요? 마음 둘 곳, 비빌 언덕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세상은 파괴되고 복원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일자리는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지는 최소한의 마음 둘 곳인데 그것도 위태롭고요.” 그는 이 시선으로 구의역 청년(‘갈색 가방이 있던 역’)과 쌍용차 해고자(‘스물세 번째 인간’)를 위한 시를 썼다.

그는 ‘형’에서는 자유로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시율성(詩律性)에 대해 노래한다. 시인은 시처럼 자유롭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답했다. “자유롭지 못하니까 시의 운율을 추구하는 거겠죠.” 마음 둘 곳을 잃고 부유하는, 부자유한 이들의 모습을 그린 시들은 왠지 모를 위로를 준다. 부조리한 쾌감을 안긴다. 시율성의 선물일까.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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