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올리느냐 내리느냐… 세계는 지금 ‘최저임금 길찾기’ 한창


 
미국 저소득 근로자들이 지난달 14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세이브 더 레이즈(Save the Raise)’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현행 10달러(약 1만1190원)에서 7.7달러(8620원)로 낮춘 주의회의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트위터


“나는 왜 시급 7.7달러(약 8620원)밖에 못 받는 걸까. 맥도날드는 손쉽게 돈을 벌고 있는데….”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하는 베티 더글러스(59·여)는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5월 세인트루이스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10달러(1만1190원)로 인상되면서, 그의 소득도 올랐다. 하지만 ‘10달러의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최저임금 낮춘 미주리주

미국 저임금 근로자들은 2012년 말 ‘15달러(1만6790원)를 위한 싸움(Fight for $15)’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존중받고 싶다. 15달러를 달라”고 외쳤다. 미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에 맥도날드, 월마트 등 주요 기업은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최저임금 7.25달러(8145원)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주·시의회가 자율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한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화당의 반대에 부닥쳐 최저임금 인상이 무산되자 지방정부가 나섰다. 현재 50개주 중 29개주가 연방정부 기준치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채택하고 있다. 올 들어 워싱턴주와 매사추세츠주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11달러(1만2310원)로 올렸다. 워싱턴DC,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은 최저임금 15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주리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추세에 역행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주에 소속된 세인트루이스 시의회는 지난 5월 최저임금을 10달러로 인상했다. 하지만 주의회가 태클을 걸어 오는 28일부터 세인트루이스의 최저임금을 인상 전인 7.7달러(8620원)로 되돌리기로 했다.

에릭 그라이텐스 미주리 주지사는 “우리는 더 많은 일자리를 원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죽인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근무시간이 줄고 심할 경우 근로자가 해고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의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인상 결정 당시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는 논문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지난달 14일부터 최저임금 10달러 유지를 요구하는 ‘세이브 더 레이즈(Save the Raise)’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건물관리인 시에라 파커(31·여)는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 소식을 듣고 기뻐서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는 “월세를 제때 낼 수 있게 됐다. 카드 빚을 갚고, 얼마간 저축도 할 수 있게 됐다. 정말 가지고 싶었던 새 옷도 살 수 있었다”며 “최저임금이 다시 떨어지면 그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미주리주 상원의원 자밀라 나시드는 “많은 저소득층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제 겨우 소비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라이텐스 주지사와 공화당은 가난한 이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자비하고 잔혹하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실험실’ 시애틀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오히려 고용 감소로 연결돼 소득을 감소시키는가. 경제학자들은 미국 최초로 최저임금 15달러의 벽을 넘어선 워싱턴주 시애틀을 주목한다. 시애틀의 최저임금은 2015년 9.47달러(1만569원)에서 올 들어 15달러로 올랐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연구팀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애틀 지역 근로자의 소득이 늘었으며, 우려했던 고용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외식업계 종사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 외식업계 전체 근로자의 임금은 1% 올랐으며, 일자리 수는 유의미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 결과를 모든 업종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최저임금이 인상된 이후 시간당 임금은 3.1% 올랐지만, 고용주가 저임금 근로자의 일감을 고임금 근로자한테 맡기면서 전체 근로시간이 9.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저임금 근로자의 한 달 평균소득은 오히려 1897달러에서 1772달러로 125달러(13만7880원) 감소했다는 것이다. 일자리 수도 9만3382개에서 8만6842개로 7% 줄었다. 제이컵 빅더 연구원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할 경우 취약 계층은 오히려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저임금 근로자가 받는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다만 지역 경제 현실에 비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애틀은 시범 도시로서 최저임금 외에도 근로자 가족 지원, 생활임금 보장 등과 관련해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실험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최저임금제 정착시켜 실업률·저임금 근로자 줄여

캐나다·영국, 생활비 수준으로 과감히 인상

핀란드, 25∼58세에 기본소득 주는 사회적 실험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 흐름이다. 여기에 주요 선진국은 생활임금제, 기본소득제 등 다양한 대안을 도입하는 등 노동과 임금,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최저임금을 도입한 독일은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제도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당초 4.8%였던 실업률은 지난해 3월 기준 4.2%로 0.6% 포인트 하락했다. 독일 경제사회학연구소는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시간당 소득이 8.5유로(약 1만1090원) 미만인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6%에서 3%로 지난해에 비해 현격하게 줄었다고 밝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지난 6월 최저임금을 2019년까지 30% 인상하겠다는 파격적 법안을 내놨다. 법안이 통과되면 당장 최저임금이 11.4캐나다 달러(1만160원)에서 14캐나다 달러(1만2470원)로 오른다. 캐슬린 윈 온타리오주 총리는 “최저임금을 생활비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25세 이상 모든 근로자에게 국가 생활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생활 임금(living wage)’은 물가상승률과 가계소득을 고려해 책정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최소 수준의 임금을 일컫는다. 생활임금은 기존 최저임금보다 10% 높게 책정됐다. 영국 정부는 시간당 7.2파운드(1만470원)의 생활임금을 2020년까지 최소 9파운드(1만3090원)로 인상할 계획이다. 영국 최저임금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생활임금제 도입으로 주 26시간 근로자 기준 연간 400파운드(58만1500원)의 소득 인상 효과가 나타났다.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11월 실업수당 수급자 17만5000명 중 25∼58세 남녀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지난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매월 기본소득 560유로(73만410원)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삶의 변화를 관찰해보자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일정한 금액을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숙련 일자리가 소멸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근로환경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집권 자민당의 신성장 전략에 따라 최저임금을 매년 3%씩 인상, 현행 823엔(8290원)에서 2020년 전국 평균 1000엔(1만80원)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최저생계비의 70%에 불과한 현행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중국은 2006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며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천명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차츰 낮아지면서 지난해 발표한 제13차 5개년 계획에 최저임금 인상 목표를 포함하지 않았다.

글=신훈 기자 zorb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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