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초심 조심



문화센터 기타 교실에 등록을 했다. 학생은 열 명 정도. 첫 시간에 선생님은 몹시 긴장한 기색이었다. 자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가르쳐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렇게 됐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이름을 좀 익히겠다며 출석을 부르는데, 들고 있는 출석부가 파르르 떨리는 듯도 했다. 나는 잠시잠깐 수십 년 전 첫 강의를 하던 때로 되돌아갔다. 출석을 다 부르고 난 뒤 얼마나 눈앞이 깜깜했던가. 수업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세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이 이렇게 끝났던 것 같다.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 학교에서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마친 선생님의 말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싶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죽을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어떻든 수업은 계속됐고, 나는 살아남아 아직도 학생들 앞에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처음 시작하던 때처럼 순정해지자,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 근본을 짚어보자, 뭐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저런 초보 시절,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시기를 생각하면 조마조마할 때가 더 많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때였지 하는 흐뭇한 기분보다는 참 서투르고 무모했지 싶어 가슴이 뜨끔하다. 복통을 일으키는 긴장감, 쥐구멍을 찾고 싶은 열패감. 그런 것들이 경험 쌓인다고 찾아오지 않겠는가마는, 초보 때만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늘 초심이 조심스럽다. 초심이 무사히 지나고, 능숙하게 안정돼서 편안한 마음에 자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누구의 초심이든지.

그러기 위해서는 초심을 대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초보 선생님을 돕는 방법은 가르치는 대로 잘 따르는 좋은 학생이 되는 것이다. 아이고, 그런데 나는 수업도 빠지고, 끊어먹은 줄은 수업 직전에야 가까스로 갈고, 그러니 좋은 학생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또 가슴이 뜨끔하다. 초보 학생인 나를 누가 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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