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축소지향형 쓰레기



면세품 인도장에서 물건을 찾고 보니 부피가 엄청났다. 내용물은 기능성 베개였는데 부피를 고려하지 않은 주문의 결과였다. 좀 과장하자면 그 박스는 내 키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일본에 도착해서 미리 부친 캐리어를 찾으면 그 안에 이 박스를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타국에서 다시 상봉한 캐리어는 베개 박스보다 작았다. 결국 내용물만 꺼내고 박스는 버리기로 했다.

박스는 자기 몸체를 안아줄 만큼 좀 큰 용량의 쓰레기통을 필요로 했는데, 그 공항에는 우산 몇 개를 꽂아두면 다 찰 것 같은 쓰레기통만 보였다. 박스를 몇 번 접어서 표면적을 줄이려고 했지만 두껍고 질긴 재질이라 잘 접히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관절을 우두둑 꺾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접혔다고 생각한 면이 갑자기 펼쳐지면서 내 팔에 스크래치를 내기도 했다. 접어도 여전히 거구인 그 박스를 들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본 거리의 쓰레기통은 죄다 작았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만든 쓰레기를 가방에 넣어 다시 집으로 가져간다더니 정말 그런 듯했다. 쓰레기를 허용하지 않는 거리라니, 기대할 건 이제 호텔뿐이었다.

그러나 호텔방 쓰레기통은 쓰레기통이라기보다 차라리 크리넥스티슈갑 정도로 보였다. 그게 유일했다. 당연히 박스는 그 쓰레기통 투입구도 통과하지 못할 게 분명했고, 나는 이제 박스를 한국까지 다시 들고 가야 할지도 몰랐다. 방의 쓰레기통 용량이 부족하면 그 옆에 잘 놓아둬도 되겠지만, 나를 망설이게 한 건 방 안의 정렬이었다. 일본의 비즈니스호텔답게 작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는 방이었다. 모든 동선이 기능적으로 배치된 이 방에서는 물건이 어떤 자리에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낯선 도시에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쓰레기를 버리는 방식을 관찰하곤 했지만 이 도시에서는 쓰레기와 물아일체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박스를 도시락 김 크기로 찢어내기 시작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는 생각으로 단순해지는 시간, 어쩌면 그게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는지도.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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