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을 잡아라] 5조원 미만 그룹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



총수일가란 이유만으로 천문학적인 부당이득을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는 여러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자산총액 5조원 미만 중견그룹은 아예 대상에서 빠져 있고, 5조원 이상 대기업들은 규제기준 이하로 지분율을 조정해 감시망을 피해가고 있다.

대기업집단 소속이 아닌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그룹의 내부거래는 공정거래법상 규제대상이 아닐뿐더러 이를 공시할 의무조차 없다. CEO스코어가 2015년 기준 국내 100대 그룹 중 대기업집단 소속이 아닌 51개 그룹의 계열사 간 거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에 해당하는 계열사는 14.8%에 달했다.

실제 중견기업들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 사례는 많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모두 21개 중견그룹에서 일감 몰아주기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동원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수혜 회사다. 2010년 4월부터 2015년 말까지 6년간 평균 내부거래 비중은 40.13%에 달한다. 김재철 회장과 차남 김남정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지분의 94.64%를 보유하고 있어 내부거래 이익은 총수일가의 자산 증가에 직결된다. 동원그룹은 자산총액이 4조7000억원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농심그룹과 오뚜기그룹, 한미사이언스그룹, 넥센그룹, 풍산그룹, 대상그룹 등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중견그룹으로 꼽힌다.

이들 그룹은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아니라 부당지원 불공정 행위로 제재할 수 있다. 그러나 부당지원 행위는 다른 회사와의 경쟁을 제한할 정도의 규모 등 요건이 엄격해 사실상 공정위가 이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3일 “자산총액 5조원 미만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며 “규제대상 기준 확대는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대기업들도 이를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현 공정거래법은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그룹 중 총수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계열사(비상장계열사는 20%)를 내부거래 감시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는 2015년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량 매각해 총수일가 지분율을 29.99998%로 맞췄다.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이 매출의 20.6%로 위반 기준인 12%를 넘어섰지만 총수 지분율이 기준에 못 미쳐 규제대상에서는 빠졌다. 내부거래 비중이 54.4%에 달하는 계열사 이노션 역시 총수일가의 지분 비중을 29.995%로 낮추면서 규제를 비껴갔다.

이런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은 규제대상 계열사 기준을 30%에서 20%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시급하지만 공정위는 법 개정과 시행령 개정 중 어떤 방식을 취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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