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을 잡아라] 大재산가 편법 상속·증여 노골적… ‘통행세’도 만연




상속·증여재산은 100% 불로소득인 만큼 세율이 최대 50%로 가장 높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일가부터 수십억원을 지닌 자산가까지 상속·증여세는 가장 피하기 쉬운 세금으로 여긴다. 경제시스템에 만연한 ‘통행세’는 또 다른 사회적 불법 상속·증여행위다. 단순히 대형 공기업 퇴직자가 세운 회사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고, 그 공기업과 연줄이 없는 건실한 업체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 왜곡된 ‘노블레스 오블리주’(기득권층의 사회적 책무)를 감시하고 제재해야 할 정부는 되레 상속·증여제도 완화에 앞장서왔다.

증여세 제대로 안 내야 대재산가

지난해 9월 오뚜기 총수일가의 1700억원 상속세 납부는 화제를 낳았다. 법에 따라 상속세를 냈는데 미담이 될 정도로 대기업 총수일가의 편법 상속·증여는 만연하다. 최근 논란에 휩싸인 하림이 대표적이다. 하림 김홍국 회장은 2011년 비상장사인 올품의 지분 100%를 당시 만 20세의 대학생 아들 준영씨에게 증여했다. 올품은 그룹 지주회사인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증여세 100억원은 올품이 대출받아 분납한다. 올품은 2012년 올린 매출액 858억원 가운데 내부거래액이 727억원(84%)에 이른다. 일감몰아주기로 덩치를 키웠다. 증여 6년 만에 준영씨는 사실상 증여세 한 푼 내지 않고, 자산 10조원이 넘는 그룹의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재벌 총수일가는 이런 노골적인 편법 상속·증여가 어려울 때엔 지주회사 제도를 악용해 2·3세의 실질 지분율을 높인다.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익법인을 만들어 ‘돈 안 들어가는’ 경영권 승계를 꾀하기도 한다.

상속·증여세 회피는 재벌 총수일가만 하는 게 아니다. 자산가들은 자녀 명의로 고가 전세계약을 하고,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않는 수법을 애용한다. 자녀는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내고, 부모는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식이다. 세정 당국 관계자는 3일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대표, 고가 부동산 소유자 등 상속·증여세 대상인 상위 2% 가운데 제대로 세금을 내는 이는 열 명에 한 명이 될까 말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시스템에 만연한 ‘통행세’

‘통행세’는 기업이 계열사나 퇴직자 재직회사 등 특별한 관계의 회사를 부당 지원할 때 발생한다. 그만큼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몫에서 빠져나간다.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통행세 관행은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 프랜차이즈업체 등에 널리 퍼져 있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정우현 전 미스터피자 회장의 경우 친인척이 운영하는 치즈 납품업체와 간판 교체업체를 통해 가맹점에 부담을 전가했다.

지난해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관련된 은성PSD는 임직원 125명 중 90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다. 이들은 퇴직 후에도 새로운 직장·수입을 보장받았지만 정작 관리는 소홀했다. 현장 작업자의 열악한 상황은 지난해 김모(19)군의 사망사고로 드러났다. 공공기관 퇴직자를 위한 통행세가 청년근로자의 ‘열정페이’와 ‘목숨값’으로 지불된 셈이다.

기득권 편에 섰던 정부

기획재정부는 2014년부터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이 계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말이 ‘증여세제 합리화’다. 기재부는 상속·증여세율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추세가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속·증여세 부담을 강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2015년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자녀·손자 주택 구입이나 전세자금 증여에 대해 한시적으로 세금을 면제하는 방안까지 추진했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9년간 상속·증여세 부담은 완화됐다. 중소기업 소유자가 자녀에게 가업을 물려줄 때 세금을 면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의 공제한도는 2007년 최대 1억원에서 현재 500억원으로 뛰었다. 공제대상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이었으나 지금은 매출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런 정책에 호응해 자산가들은 앞다퉈 증여를 했고, 지난해 증여세수는 2조7000억원으로 4년 전보다 1조원 이상 늘었다.

또한 국세청은 2015년에 고액 전세를 이용한 증여세 탈세를 엄격하게 막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탈세에 따른 추징세액은 153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억원 줄었다. 홍익대 경제학과 김유찬 교수는 “부동산 관련 소득 등 고소득층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도 적발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과세 당국의 의지 부족으로 관련 탈루행위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신준섭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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