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가이드 탓이야



베트남에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가이드는 하루의 일정을 전날 저녁과 당일 아침에 알려준다. 가는 곳에 대해 설명하고, 목적지에 닿을 때쯤 한두 번 언급한다. 그러니 ‘고무나무’라는 말을 열 번 이상은 들었을 거다. 그런데 창가에 앉은 사람이 “어, 고무나무다!”라고 외치자 평소 목소리 큰 아저씨가 묻는다. “뽕나무요?” “아니, 고무나무요.” “곰나무요??” “아니, 고무나무요.”

비행기가 연착하면 누구 탓이죠? 가이드가 묻는다. 날씨 탓? 복잡한 공항 탓? 쇼핑에 정신 팔려 늦게 탄 손님 탓? 의견이 분분하다. 가이드가 답한다. 가이드 탓입니다. 짐이 늦게 나오면 누구 탓이죠? 다음부터 사람들은 합창한다. 가이드 탓! 걷다가 넘어지면? 가이드 탓!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가이드 탓! 길이 막혀도, 마사지사 손길이 시원찮아도 모두 가이드 탓이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어가며, 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며, 무거운 생수 보따리를 들고 모래언덕을 오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는 사실 탓할 게 도무지 없어 보이는 가이드였다.

웃으면서 한 이야기였지만 뼈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갑질을 많이 당한 터일 것이다. 그간 여행에서 그런 사람을 꽤 봤다. 왜 나를 받들어 모시지 않는 거냐, 어디 나한테 바가지를 씌우려 드는 거냐,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이런 태도의 사람들. 공중도덕은 공중에 날린 채, 귀는 없고 입만 있는 사람들. 일상에서 벗어나러 떠난 여행에서 일상보다 더한 스트레스로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세월이 흐르며 그런 사람들도 줄어들고 나도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인간 자체가 결함투성이니 내 결함이 저 사람 결함보다 나을 것도 없지 않은가.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결함을 겪으며 인간 공부가 넓어진다는 게 이런 여행의 장점 중 하나다. 그 가이드처럼 유머로 넘기는 태도도 새삼 배우는 한 수다. 그나저나, 열대과일의 향연 속에서 지내다 돌아와 보니 도대체 뭐 먹을 게 없어 보인다. 이게 다 가이드 탓이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