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병역거부 논쟁 다시 확산… 이번엔 끝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정부에 권고하면서 논쟁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인권위는 27일 상임위를 열고 국방부 장관에게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대체복무제 도입 계획을 수립·이행할 것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상임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시급히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하급심의 무죄판결이 이어지는 등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되는 추세”라고 28일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인권위의 권고 공문이 접수되는 대로 권고 사항을 확인한 후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에게도 현재 국회에 발의된 병역법 개정안을 조속히 입법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주민·이철희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달 ‘소신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실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재인정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 2007년 노무현정부 때에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식 검토한 적이 있지만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철회했다.

하지만 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올해만 13번 유죄 판결을 내리는 등 아직 병역면제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최근 대법원은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신모(22)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병역의무는 국가 공동체 존립을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 등이 이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반드시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 여론 역시 휴전으로 인한 분단 상황을 들어 부정적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의뢰를 받아 성인 남성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 이들이 72%로 절대 다수다. 인권위가 지난해 만 15세 이상 국민 1504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46.1%로 절반에 못 미쳤다. 다만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방안에는 찬성한다는 의견(70%)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달리 북한과 휴전 상태”라면서 “모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와 동일선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수 케이스를 인정함으로써 선례를 남기면 끝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희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사무총장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이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지 않으면 일종의 모순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반면 박승호 국제앰네스티 간사는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대만 등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징병제 국가에서는 대체복무제 신청 인원이 정원 미달되기도 했다”며 “기간과 난이도를 잘 조율하면 될 문제인데 정부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도 “유럽 국가 대부분은 제1차, 2차 세계대전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며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이유로 대체복무제에 반대하는 것은 논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2005년 12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면서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복무의 1.5배로 하고 단체합숙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에 필요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필요한 영역에 복무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공정한 판정기구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유엔 193개 회원국 중 57개국이 법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고 12개국은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독일은 헌법에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전쟁복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병역거부권을 명시하고 있고 196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글=허경구 이재연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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