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가짜 지진



나는 지금 대지진을 겪었던 도시에 와 있다.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 불 밝힌 책상 앞에 앉아서 땅이 흔들린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깨어 있었던 건 지진 때문이 아니라 단지 원고 마감 때문이었지만, 행간에 한 번씩 돌들을 떠올렸다. 지진으로 이 도시의 성이 무너졌을 때 퍼즐처럼 흩어진 돌들 말이다. 십만 개가 넘는다는데, 그 십만 개의 돌들이 원래 위치를 기억할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타국의 낯선 호텔, 새벽의 책상은 집중하기가 좋은 환경이라 어느 순간엔 정말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짜 지진을 느낀다. 언젠가 다른 도시의 쇼핑센터에서도 그랬다. 원활한 쇼핑을 위해 L에게 남성의류나 운동화가 있는 곳, 또는 휴식할 수 있는 의자의 위치 등을 미리 소개했다. 그러고서 본격적으로 내 물건(이 될지도 모르는)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L이 쓱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약간 건물이 흔들린 것 같지 않아?” 그는 진짜 뭔가가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고, 그 말은 내가 쇼핑을 끝내도록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 몇 개를 그대로 내려놓고 서둘러 그 육중한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정말 포기할 수 없었던 래시가드 하나를 계산하긴 했지만.

그 건물을 벗어나고 보니 세상은 평온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일 내로 이 도시를 강타할 태풍의 경로에 대해서만 뉴스가 흘러나올 뿐, 땅이 흔들렸다거나 건물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내 쇼핑 시간만 단축된 셈이라 그런 효과를 노린 L의 계략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L은 지금까지도 그때 바닥이 흔들리는 걸 두 번이나 느꼈다고 말하지만. 나도 그 저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초 단위로 재현할 수도 있을 만큼 기억이 또렷했는데, 어쩌면 그게 가짜지진의 진짜 효용인지도 모르겠다. 청진기로 낯선 몸의 구석구석을 짚어보는 것처럼 섬세하게 시공간을 기억한다는 점 말이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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