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네버랜드의 돌봄 노동



지난 일주일 내내 걸리는 단어가 있었는데 ‘잠자리 보살핌’이었다. 사퇴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쓴 책에 나온다고 해서 찾아보니, 육아 관련 단어가 아니고 ‘남편에 대한 잠자리 보살핌’이라는 말이어서 충격적이었다. 왜 아내인 여성이 어린이가 아닌 성인 남성인 남편까지 잠자리 보살핌을 해야 할까. 산업혁명으로 부유했던 100년 전 런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피터 팬과 웬디.

피터 팬이 웬디의 집까지 날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네버랜드의 ‘집 없는 소년’들에게 잠들기 전 웬디가 동생들에게 읽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기 위해서. 피터 팬은 웬디를 소년들의 ‘잠자리 보살핌’을 위해 네버랜드로 초대한다. 처음부터 피터 팬은 웬디의 남동생들은 데리고 갈 마음이 없었다. 네버랜드에 소년들은 넘쳐나므로. 하지만 웬디가 동생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우겨서 마트에서 파는 판촉용 햄 묶음처럼 ‘1+2’로 웬디의 남동생들까지 네버랜드로 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웬디는 꿈과 모험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피터 팬과 소년들의 돌봄 노동을 위해 네버랜드에 갔다는 이야기다. 물론 인어와 해적, 인디언들이 있고 상상 속 모든 것이 그대로 펼쳐지는 네버랜드는 어린이들에겐 천국일지 모르지만, ‘여자 어린이’ 웬디에겐 아니었다.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피터 팬과 소년들이 자고 있는 밤에 웬디가 혼자 양말을 기우며 “세상에! 때로는 혼자 사는 여자가 부러울 정도라니까”라고 탄식하는 부분이다. 만화나 영화, 뮤지컬로 각색된 피터 팬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원작에서 웬디는 시종일관 런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피터 팬의 저런 부분은 100년 전에도 1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기에 원작의 완역본은 참으로 소중하지만, 현실의 돌봄 노동을 네버랜드에서도 해야 한다면 현대 여성들에게 ‘피터 팬’은 끔찍한 동화다. 그러니 남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잠자리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육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명확하게 알면 좋겠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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