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터뷰  >  일반

‘남한산성’ 100쇄 김훈 “지금은 조선 못지않은 관념의 시대”



김훈(69)의 장편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이 출간 10년여 만에 100쇄를 돌파했다. 2007년 출간 이후 59만부가 팔렸다.

김훈은 7일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 에디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역사 자체에 특별한 애착이 있어 역사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정한 주제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는 시대를 골라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관념과 속세의 길이 부딪치는 것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헐렁한 셔츠와 바지의 편안한 차림으로 나온 작가는 때론 날카로운 말을, 때론 유쾌한 자기고백을 쏟아냈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 군을 피해 남한산성에 머문 47일을 그린 작품이다. 그가 쓴 다른 소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이상 문학동네)도 이순신 장군과 가야 악사 우륵이 각각 주인공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로 역사담론을 만들 의도는 전혀 없다고 했다. 김훈은 “나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시대적 관념, 인간의 야만성, 그 속에서 빚어지는 삶의 풍경을 묘사하려고 했다. ‘남한산성’은 결론이 없는 소설이다. 인간의 고뇌와 방황, 사는 ‘꼬라지’ 그런 것들만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 책이 묘사에 머문다고 했지만 관념에 매몰된 시대에 대한 묘사 자체가 비판적 성찰이 될 수도 있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문제는 ‘관념’이었다. 이 문제는 지금도 그대로 진행 중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조선시대 못지않은 ‘관념의 시대’”라고 지적했다. 곧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국회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북한은 주적이냐 아니냐’ 이런 썩어빠진 질문을 한다. 북한은 실재하는 군사정치체제다. 싸움의 대상이자 대화의 대상이다. …정의 불의 도덕 등 모호한 관념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에) 모호한 장애물처럼 걸려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시대를 전환하는 능력을 진정한 주권이라고 보는 듯했다. “병자호란 후 조선은 외교권을 잃고 주권이 훼손됐다. 하지만 조선 말 지식인들이 북벌 주장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자는 북학운동을 했다. 나는 이 전환이 조선시대 지식인의 역동성이고 우리 주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으로 시대를 읽는 지식인의 일갈이다.

‘남한산성’은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 인간의 길을 묻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런 고민을 안고 이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김훈은 추가로 쓴 ‘못다 한 말’에서 김 전 대통령이 “김 작가는 김상헌(척화파)과 최명길(주화파), 둘 중에 어느 편이시오”(428쪽)라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김훈은 그때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100쇄 기념 아트 에디션에는 한국화가 문봉선의 그림 27점과 작가의 못다 한 말이 새로 수록됐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