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우익 문학청년의 탄생











그는 최근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를 읽어내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해왔다. 보수의 죽음으로 그는 상처받았다. 그 이전에 그는 오래 전부터 세상과의 거친 논쟁으로 입은 상처를 토로하고 있었다. 2001년에는 한 보수매체에 실린 칼럼이 문제가 되어 사람들이 그의 책을 한데 모아 불태운, 사상 초유의 분서갱유 사건도 겪었다.

그는 말한다. 그 논쟁과 사건들은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나를 더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백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내 편은 없었다. 사실 다 왼쪽으로 가버리고 혼자 남으니 불안하기도 했다." 좀 더 들어보자. "(진보로) 옮겨 앉을 때를 놓친 후 (보수가) 나에게는 하나의 의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니 이제는 속된말로 배 째라 하는 심정"이다. 왼쪽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하는 세상과 불화를 고집하는 고독한 보수의 절박한 오기가 느껴지는 고백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이문열이다. 그는 80년대 최고의 문제작가로 일컬어진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 ‘금시조’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문제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1980년대에 비평가와 대중독자 모두에게 사랑받은 작가였다. 평론가 김현에 따르면 인기의 비결은 교양주의에 있었다. 그의 소설은 “계몽주의적 열정이 만들어낸 웅변조의 감정을 미학적 교양으로 감싼, 계몽주의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1980년대 이문열의 소설은 현실을 등진 예술지상주의와 동양적 귀족주의, 반민중적 엘리트주의의 문학적 완성을 향해 달려가며 보수적 문학주의의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젊은 날의 초상’(1981)이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은 가난한 젊음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하구’ ‘기쁜 우리 젊은 날’ ‘그해 겨울’ 등 연이어 발표한 세 편의 중편을 묶어 1981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쳐 군사정권의 폭압 통치가 극에 달한 시절, 그런 시대의 격랑을 짐짓 모른 척한 젊음의 고뇌와 미학적 교양의 순례기를 쓰고 또 독자에게 각광받은 것은 그 자체로 징후적인 현상이다. ‘젊은 날의 초상’은 환멸과 허무를 딛고 재생을 다짐하는 한 젊음의 순례라는 교양소설의 형식을 통해 이후 전개될 우익 문학주의가 발아하는 원초적 장면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국문학사에는 월북하거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좌익 아버지를 둔 가족사를 원죄처럼 짊어졌던 작가들이 있다. 김승옥과 이문구, 이문열이 바로 그들이다. 김승옥은 그의 문학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삭제했으며 이문구는 우익 문학자인 김동리의 그늘로 들어가 그를 유사 아버지로 모심으로써 원죄를 방어했다. 그런데 월북한 아버지는 이문열에겐 어떤 존재였는가? 그는 ‘헛된’ 이념을 좇아 처자식을 버린, 그래서 온 가족을 연좌제의 고통 속에 내던진 이기적인 존재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의 복합감정은 이문열 문학의 은밀한 동력이며 아버지 반대쪽의 우익 보수의 길로 내달리게 만든 숨은 동기다.

‘젊은 날의 초상’은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제는 삼십대 중반의 중년이 된 ‘나’가 황폐하고 혼란스러웠던 젊은 날을 회상한다. 낯선 도시의 싸구려 하숙방을 전전하며 떠돌던 ‘나’는 열아홉을 넘긴 나이에 고향 강진으로 돌아와 대학입시를 준비한다. 불안과 비애에서 탈출해 황폐한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길이 대학 진학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라린 질병의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겪고 가까스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생활은 순조롭지 않다. 가난에서 비롯된 극심한 피로, 지적 허기와 치기로 점철된 불안정한 생활,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방황, 실연의 아픔으로 ‘나’는 고통 받는다. 와중에 나’를 버틴 건 ‘진정한 가치’에 대한 갈망과 지식에 대한 허기다. 함께 어울렸던 동기인 ‘김형’이 어이없이 죽고 ‘하가’마저 떠나자 ‘나’는 대학을 중도에 그만둔다. 그러다가 ‘나’는 무허가 여인숙에서 만난 열다섯 살짜리 고아소년 김순동을 만난 뒤 진리에 대한 자신의 탐구가 사실은 지적 허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허망한 도회, 허망한 삶, 배움”을 벗어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서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며 구원”이라는 사실을, 그 깊은 절망을 통해서만 진실한 예술적 영혼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고.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 이 글도 마찬가지-만약 이 글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그 겨울의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불완전한 모사(模寫)가 아니라, 필경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내가 지새운 피로와 번민의 밤에 대해서라고.

작가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도달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동경하고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다. 비록 그에 다다르지 못해 절망한다 해도, 그 절망을 떠안고 불가능을 무릅쓰는 예술적 고투가 ‘나’를 구원할 것이다. 누추한 현실을 초월한 절대적 가치로서 예술에 대한 갈망과 절망을 절대화하는 이 도저한 예술지상주의가 이 소설이 다다른 결론이다.

‘젊은 날의 초상’이 당대 독자들을 매혹시킨 요인은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고전적인 성장 서사가 주는 매력에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저 결론에 이르는 길의 곳곳에 ‘나’의 입을 통해 철학 종교 문학을 종횡하는 방대한 지식과 교양의 숲을 쌓아올린다. 플라톤 아우렐리우스 니체 하이데거 비용 등 계통과 두서없는 서구적 교양의 목록이 현란하게 나열된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 소개되는 이 방대한 서구적 지식과 교양의 목록, 그리고 그를 경유한 과시적인 관념체계의 현시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교양주의적 욕구를 함께 자극했다. 어쩌면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보았던 것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국적 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젊은 날의 초상’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신비화하는 저 교과서적 결론을 떠받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실에 대한 냉소와 비하다. 예술의 가치는 현실을 초월한다. 예술의 절대성 앞에서 현실은 초라하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도전하고 피 흘릴 가치가 있는 무엇이고 그에 대한 절망조차 의미 있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럴 가치가 없다. 현실은 인정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질병과 고통과 비애로 얼룩진, 그래서 반드시 탈출해야 하는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애써봐야 현실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젊은 날의 초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작가의 논리다.

현실에 대한 지독한 냉소, 또 그와 반비례해 높아지는 지식과 교양,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갈망이 이 소설의 기본 축이다. 그리고 이 축을 이끌어가는 건 작가의 내면을 움직이는 어떤 정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곳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누설된다. 그 정념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원한(ressentiment)이다. “평균치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한다. 애초 ‘나’가 유랑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가난한 하층민의 삶을 벗어나 “평균치의 삶”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대학 생활도 고통의 연속이다. 가정교사 생활의 고단함, 모범생 동기들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책에 대한 턱없이 높은 갈망. 대학생활은 오히려 자신의 궁핍한 삶을, 그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그런 자기와는 달리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족한 동기들에 대한 열등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속한 문학회 회원들을 향한 조롱과 기괴한 복수, 사랑하던 혜연의 풍족한 세계를 견디지 못해 망가뜨리는 악의적인 폭음과 주정, 또 그 이면의 “뒤틀리고 비꼬인 자의식” 등.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입신출세를 불가능하게 하는 “혹심한 궁핍”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지식과 교양, 문학과 예술의 진리에 대한 갈망은 원한을 야기한 그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입신출세의 좌절에서 비롯된 원한이 근대문학의 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설가 이청준은 문학이 “그를 패배시킨 현실을 자기 이념의 질서로 거꾸로 지배해나가려는 강한 복수심”에 의해 씌여진다고 말했다. 이문열의 소설 또한 복수의 문학이다. 그의 ‘젊은 날의 초상’은 그 원한과 복수심을 자양 삼아 자라난 젊은 우익 문학주의의 내면 풍경과 그 탄생의 장면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문열 누구인가
80년대 비평가·독자 모두가 사랑한 국민작가


이문열(69·사진)은 1977년 대구매일신문,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나자레를 아십니까'와 '새하곡'으로 등단했다. 79년 '사람의 아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이 책은 그 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들소' '필론과 돼지' '금시조' '익명의 섬' '칼레파 타 칼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과 같은 중단편을 비롯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레테의 연가'(1983) '영웅시대'(1984)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매번 비평적·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80년대 이문열은 비평가와 독자 모두가 사랑한 국민작가였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동인문학상(금시조·1982) 대한민국문학상(황제를 위하여·1983) 중앙문화대상(영웅시대·1984) 이상문학상(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현대문학상(시인과 도둑·1992) 호암예술상(변경·1999) 등을 수상하며 작가적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이문열은 자신의 소설들은 물론 한국출판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삼국지'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독서목록의 '박물지'라 할 수 있는 '변경' 등을 통해 한국적 교양주의의 물적 토대를 이루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는 집단주의를 거부하는 개인주의자, 예술지상주의자이면서도 보수 성향의 정치적 발언을 반복하면서 '우익 보수주의자 작가'로 비판받기도 한다.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다보니 90년대 이후 그의 문학작품들은 다소 저평가 받는다는 시각도 있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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