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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혜선 “젊어서 힘든 만큼 성숙해지네요”



“두 아이를 가진 싱글맘으로서 연주자와 교육자 두 역할을 다 잘 해내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30∼40대의 힘든 시간 속에서 그만큼 성숙해졌고, 50대에 접어든 지금 여러 면에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백혜선(52)이 오는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4년 만의 단독 리사이틀을 연다. 2013년부터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초의 동양인 교수로 임용된 후 국내 연주 기회가 줄었던 만큼 클래식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로서 매 학기마다 열흘 정도 한국을 찾는 그가 29일 언론과 오랜만에 만나 본격적인 활동 계획을 털어놓았다.

“2019년이 국제무대 데뷔한지 3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2018∼2019시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개) 연주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이번 10월 독주회는 그 전야제 같은 프로그램이 될 것 같아요.”

그는 국내 클래식 시장이 태동하던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스타 연주자로 급부상했다. 89년 윌리엄 카펠 콩쿠르 1위, 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에 이어 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 없는 3위를 차지하는 등 당시 한국 아티스트 중 최고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또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직후 29세의 나이로 서울대 교수가 돼 최연소 임용 기록을 세웠으며 98년 EMI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음반 3개를 발매하는 계약을 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는 2005년 돌연 서울대를 사직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행을 택했다.

“당시 마음속엔 두려움이 컸어요. 이렇게 쉽게 올라가도 되는 것인지, 결국 꼭짓점을 치면 내려가는 길만 남은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내가 너무 과도하게 포장되는 것을 보면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다시 배우고 숙성하는 과정을 겪어냈습니다.”

그는 뉴욕 생활을 통해 조금씩 여유를 찾았고, 두 아이 역시 만 13세와 15세의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예전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다. 매년 여름 뉴욕 한복판에서 열리는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축제인 IKIF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초청돼 독주회를 열었다. 2010년 피아노 썸머 인 뉴팔츠 페스티벌 역사상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처음 독주자로 초청받기도 했다.

“연주자 중에 종교처럼 음악을 추구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음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보통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 제대로 완벽하게 못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연주자로서 따뜻함과 소통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엄마의 보살핌이 그다지 필요 없는 나이가 된데다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교수로서 자리 잡으면서 그는 연주자로서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프로젝트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전곡연주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연주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내 스스로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이제는 전곡연주로 음악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질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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