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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졸음 잡다가 사람 잡는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리치몬드 카운티에서 지난달 26일 숨진 데이비스 앨런 크라이프(16)군의 사망원인은 카페인 과다섭취로 인한 부정맥인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크라이프의 부검결과를 발표한 개리 왓츠 검사관은 “카페인이 비정상적인 심장 문제를 일으켜 뇌에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라이프는 카페라테와 대용량 다이어트 탄산음료, 에너지드링크 등 3잔을 고등학교 교실에서 2시간에 걸쳐 마셨을 뿐이었다. 음료 섭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은 크라이프는 1시간 뒤 사망했다. 왓츠 검사관은 “우리는 전적으로 합법적인 물질로 데이비스를 잃었다”며 “카페인 음료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청소년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

그동안 카페인은 피로를 덜어주는 기호식품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카페인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민지연 차의과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카페인을 600㎎ 이상 과다 섭취하면 손발 떨림이나 식은땀 불면증 고혈압 두통 신경과민 어지럼증 위장염 설사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심한 경우 경련이나 부정맥, 저혈압 사망까지도 일으킬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29일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카페인 평균 일일섭취량은 67.8㎎이라고 2015년 밝혔다. 성인 카페인 최대 일일섭취권고량 400㎎에 비해 크게 낮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속도다. 최근 몇 년 사이 카페인 섭취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2016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커피 판매시장 규모는 6조4041억원으로 2014년 4조9022억원보다 30.6% 성장했다.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15년 기준 349잔으로 2014년 341잔보다 많아졌다. 보고서는 이 같은 증가세가 커피전문점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커피전문점은 9만809곳으로 2014년 12월 5만5416곳보다 63.9% 늘었다.

카페인 알약 찾는 청소년들

평소 졸음이 많던 A양(17·여)은 인터넷에서 카페인 알약을 주문해 복용하고 있다. 수험 공부로 지칠 때 카페인 알약을 먹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카페인 알약은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이면 해외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2만원 정도인 카페인 알약 한 통에는 250여정의 알약이 들어있다. 1정당 200㎎의 카페인이 함유됐는데 캔커피 2∼3개 또는 에너지드링크 3개 정도 함량이다. A양은 처음엔 시험 기간에만 알약을 반으로 쪼개어 먹었는데, 요즘엔근 한알을 다 먹는다.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밤을 새우는 날은 많아졌고 피로가 쌓여 더 많은 카페인이 필요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체중 1㎏당 2.5㎎ 이하로 카페인을 먹어야 한다. A양처럼 체중 50㎏ 여고생이라면 125㎎ 이상을 먹으면 안 된다. A양은 카페인 알약 1정만으로도 하루 권장 섭취량 이상을 섭취하게 된 셈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성인보다 카페인 부작용이 심하다. 칼슘 흡수 방해로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

카페인만을 성분으로 하는 알약은 정식 허가된 의약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약처럼 세관 관리를 받는 유해품목도 아니다. 인터넷 직접구매로 유통은 되는데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형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카페인 알약은 대부분 해외 인터넷 구매로 이뤄지기에 관리가 안된다”며 “수입식품국에서 관리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은 청소년에게 교육·홍보를 강화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과자 빵에도 카페인이…

카페인은 어린이가 즐겨 먹는 간식에도 함유되어 있다. 식약처는 과자나 껌, 사탕에 평균 184.4㎎/㎏의 카페인이 들어있으며 코코아가공품과 초콜릿에는 평균 231.8㎎/㎏의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카페인이 전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빵, 탄산음료와 시리얼과 차, 주류 일부 제품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었다.

보통 캔커피 1개에는 74㎎, 커피믹스 12g 1잔에 69㎎, 녹차 티백 1개에 15㎎, 콜라 1캔에 23㎎, 에너지드링크 1캔에는 62.5㎎ 정도 카페인이 들어있다. 식약처가 정한 성인 최대 일일섭취권고량은 400㎎ 이하지만 이는 체중 70㎏ 성인을 대상으로 고안된 수치다. 임산부는 300㎎ 이하, 어린이·청소년은 2.5㎎/㎏(체중) 이하로 매일 섭취하는 카페인이 권고량을 넘어서지 않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 교수는 “청소년은 인스턴트 음료나 에너지드링크로 카페인을 섭취하는 경우도 많아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산모에게 더 위험

산모가 섭취한 카페인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전해질 수 있기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조연경 차의과대 산부인과 교수는 “과다한 카페인 섭취는 임산부의 혈압이나 맥박상승, 체내수분량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며 “200㎎ 정도 카페인은 태아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수 있으나 더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경우 유산 위험을 다소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에게도 카페인은 피해야 할 대상이다. 조 교수는 “모유로도 카페인이 전달되기에 엄마들의 카페인 섭취 제한을 권하고 있다”며 “하루 2∼3잔 이상 커피를 마신 후 모유를 수유하면 아기가 보채는 등 민감해지거나 잠을 잘 못 이룰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졸리거나 몸이 나른할 때는 커피보다 물 한잔을 마시고 산책이나 스트레칭 등 신체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꼭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카페인이 적은 제품이나 허브차 등으로 대체하는 게 좋다”고 제언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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