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여자는 어떻게 성장(못)하는가





“초조였다.” 오정희(70)의 단편 ‘중국인 거리’의 마지막 문장이다. ‘초조(初潮)’란 초경(初經)의 다른 표현이다. 여자아이가 자기의 첫 월경을 자각하는 이 문장은 오래도록 화제가 되었다. 그것은 한국문학에서 새로운 여성소설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중국인 거리’와 함께 ‘유년의 뜰’ ‘저녁의 게임’ ‘별사’ ‘어둠의 집’ 등의 단편을 수록한 오정희의 소설집 ‘유년의 뜰’(1981)은 해방 후 한국 여성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한 집 나가는 여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여성소설에는 가출하거나 바람 피는 여자들, 미친 여자들이 활보했다. 그녀들은 광기에 사로잡히거나 가정을 파괴하고 불륜에 빠져들었다. 모두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도전이자 몸부림이었다.

이들 소설에서 펼쳐지는 일탈적인 성(性)의 향연은 가부장제의 규범에 짓눌린 여성들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는 강렬한 자기 선언이었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길 떠나는 여자들이 탄생하는 원초적 장면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오정희는 작가 자신의 말처럼 “수량의 중단편을 쓴 ‘과작(寡作)의 작가’”로 단 한 편의 장편소설도 쓰지 못했다.

게다가 1998년 단편소설 ‘얼굴’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 잠정적 은퇴 작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정희는 한국 여성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여성작가들의 여성작가’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여성문학의 테마와 방법 대부분은 오정희의 작품을 근간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자의 내면독백을 앞세워 실제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수법, 단정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시적 언어의 효과, 여성성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작가의식. 이 모든 것은 오정희 문학의 인장(印章)인 동시에 시간을 뛰어넘어 1990년대 여성문학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자 방법론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문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오정희 소설이 있다. 오정희의 소설집 ‘유년의 뜰’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전쟁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며 여성의 성과 육체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성적, 도덕적 일탈을 감행한다. 전쟁 막바지에 아버지 없이 낯선 피난지에서 생활하게 된 어느 가족의 한 시절을 다룬 표제작 ‘유년의 뜰’을 보자. 이런 여자들이 있다. 남의 닭을 훔쳐서 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우는 할머니, 아버지를 대신해 읍내 밥집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성적 쾌락에 빠진 바람난 “늙은 갈보” 어머니, 읍내의 “달착지근한 공기”에 매료돼 밤거리를 방황하는 언니, 탐식이나 도벽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여자아이. 이들은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원하건 원치 않건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할당한 천사같은 아내와 헌신적인 어머니, 착한 딸이라는 제한된 역할을 벗어던진다. 이 바람난 여자들의 파행적인 삶의 형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존재는 아버지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 엇나가는 여자들은 가부장의 복귀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거부한다.

교문 밖에서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탱자나무 울타리 위로 솜사탕이 구름송이처럼 둥실 떠올랐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주머니 속의 케이크를 꺼내 베어 물었다.
그것을 다 먹고 났을 때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꾸역꾸역 토해냈다.
단 케이크는 한없이 한없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까닭모를 서러움으로 눈물이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욕지기가 치밀고 구토를 참을 수 없다. 이는 아버지의 귀환에 대한 신체적 거부반응이다. 왜 아버지의 귀환을 거부하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동안 저질렀던 자기들의 일탈적 행동에 대한 처벌의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여성의 관능적 욕망이 가부장제의 규범에 의해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다.

여성의 성은 역사적으로 여러 사회 제도, 가족, 법, 교회 등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 왔다. 남성의 성적 경험은 일종의 모험담으로 회자되는 반면, 여성의 성적 경험은 처벌받아야 할 나쁜 짓으로 매도된다. 여성에게 섹스는 임신과 출산을 위한 결혼을 통해서만 허락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생명의 신비라는 메타포를 중심으로 해석되었다. 거기에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통념까지 더해져 ‘어머니’는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성성장의 최종 종착지는 헌신적인, 이타적인, 자기희생적인 어머니인 것이다.

오정희의 소설은 이런 모성의 신화에 대한 도전이다. 작가는 묻는다. 과연 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유년의 뜰’ 후속편으로 볼 수 있는 ‘중국인 거리’는 전쟁이 끝난 직후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이사한 여자아이 ‘나’의 성장 과정을 여성의 (탈)모성적 운명과 결합해 다루는 소설이다. 소설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처음에 ‘나’는 양공주 매기 언니처럼 반짝거리는 미제 물건을 갖고 맘대로 남자들을 만나는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양갈보” 매기 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천하의 망종”으로 비난받지만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매기 언니의 성적 자유는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소설 속 미군 지아이(GI) 문화로 상징되는 화려한 자본주의 근대는 겉보기엔 여성에게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죽음의 문화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성장기 여자아이는 누구를 역할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분명한 건 그게 ‘어머니’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끊임없이 아이를 낳아 “다산으로 주름진 배”가 항상 부풀어 있는 어머니. ‘나’는 그런 어머니를 거부한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어머니가 막 아이를 낳으려는 순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나는 차라리 죽여줘라고 부르짖는 어머니의 비명과 언제부터인가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를 들으며 죽음과도 같은 낮잠에 빠져들어갔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였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순간 어린아이였던 ‘나’는 첫 월경을 한다. ‘나’는 이제 어머니처럼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이 되었음을 자각한다. 어머니의 힘겨운 출산과 자신의 초조 경험을 나란히 놓는 이 장면에서 ‘나’는 자신이 어머니의 삶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나’는 앞으로 언젠간 생물학적 어머니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받아들인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출산을 비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딸은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생물학적 여성의 삶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을까? “초조였다”라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성적 운명에 대해 ‘나’가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감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여기엔 숙명처럼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여성의 동물적인 삶에 대한 거부의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성적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깊은 체념이 공존한다.

오정희의 소설은 이를 통해 모성에 대한 순응과 거부라는 오래된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난다. 오정희의 소설은 그렇게 모성이 지닌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직시하면서 저항과 체념으로 응어리진 한국사회 여성의 삶을 성찰한다. 오정희의 유년기 소설에서 여자아이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게서 바람직한 역할 모델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런 여성적 삶의 모습을 거부와 순응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여성으로서 자기의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온갖 모순으로 뒤엉킨 여성의 삶을 자각하고 그 모순을 자신의 숙명으로 내면화하는 것. 관습적인 가부장제의 굴레를 거부하면서도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운명을 아프게 수긍하는 것. 여자아이는 이를 거쳐 성장한다.

여자아이의 그런 성장 아닌 성장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남성 주도적 자본주의 근대와 결합된 가부장제의 억압에 짓눌린 여성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정희의 소설집 ‘유년의 뜰’에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존재조건에 대한 뜨거운 성찰이 담겨 있다.

■ 오정희는

특유의 시적 문체로 여성의 내밀한 감정 그려내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상문학상(1979) 동인문학상(1982) 동서문학상(1996) 오영수문학상(1996) 등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한다. 이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오정희 소설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첫 창작집 ‘불의 강’(1977)까지로 불임, 낙태, 혼외정사 동성애 등과 같은 파격적인 모티프를 중심으로 여성적 삶의 ‘불구성’을 성찰한다. 제2기는 ‘꿈꾸는 새’(1978)부터 ‘파로호’(1989)로 이어지는 시기인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찾기를 소설의 중심 테마로 삼고 있다. ‘파로호’ 이후 5년간의 침묵 끝에 발표한 ‘옛우물’(1994)은 작가 자신의 말처럼 “소설 쓰기의 두려움과 주눅듦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으로 쓴 소설이다. 이후 단 세 편의 소설만을 발표한 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존재의 진실의 추구”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삶의 양면성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잔잔함의 이면에 섬뜩한 두려움을 가진 작가”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그러한 간극을 통해 여성적 자아의 내밀한 감정을 형상화했다. 삶 속에서 죽음을, 평온 속에서 난폭을, 현재 속에서 과거를 포착하고 섬세하게 펼쳐보이는 오정희 작가 특유의 시적 문체는 이후 한국의 많은 여성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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