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격의없이 소통 vs 간섭받는 기분… ‘카톡 대가족’의 명암




직장인 정모(34·여)씨는 시댁 식구가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두 딸 사진을 매일 올린다. 시부모가 "요즘 아이 사진 보는 낙으로 산다"고 하면서다. 한 살과 네 살인 딸 사진을 하루 1장씩 올릴 때마다 시부모와 시누이 부부는 '예쁘다'라거나 '많이 컸다'며 댓글을 단다.

고연령층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대가족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SNS에서 모여 소통하는 ‘카톡 대가족’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지 않아도 가족끼리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어 좋다는 이들도 있지만, ‘내 생활이 간섭받는 기분’이라며 불편하다는 가족도 있다.

대학원생 이상훈(26)씨는 가족끼리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사이가 도타워졌다고 한다. 이씨는 “세대별로 SNS 문화가 달라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맞춰가다 보니 지금은 큰 불편을 못 느낀다”며 “오히려 자주 얘길 나누다보니 실제로 만났을 때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반면 직장인 구모(31·여)씨는 명절에만 받던 스트레스를 날마다 경험한다. 올 초 할아버지가 “스마트폰하는 법을 배웠다”며 가족 단톡방을 만들면서부터다. 할아버지는 정치나 결혼 얘기를 자주 카톡방에 띄운다. 구씨는 “‘알아서 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도 할아버지가 ‘특정 당을 지지해야 한다’거나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말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카톡 대가족은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함께 늘어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50대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2012년 31.4%에서 2015년 81.9%로 뛰었다. 60대 이상의 이용률도 같은 기간 6.8%에서 32.1%로 올랐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잘만 활용되면 가족 단체방은 세대 간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고 느슨해진 가족 유대감을 되살리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가족끼리도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소통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카톡 대가족이 기존의 대가족과 다른 점은 친밀함이 간섭이 되지 않도록 ‘느슨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지향하는 점이다. 단체방으로 편리하게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지만, 취업이나 결혼처럼 민감한 얘기는 하지 않는 식이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은층이 가족 단톡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현상이나 느슨하지만 친밀한 가족 관계가 늘어나는 건 더 이상 가족이 모든 걸 나누고 책임지는 사적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가족이라면 어떤 사안이든 간섭하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가족 구성원들의 사생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이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 20세 이상 국민 5000명을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8.8%는 느슨하지만 친밀한 가족 유형을 가장 선호한다고 답했다.

가족 구성원끼리 거리를 두더라도 서로 남 보듯 하는 건 아니다. “생일이나 휴가 등 가족이벤트 때 떨어져 있던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경향은 예전보다 더 뚜렷해졌다”며 “사생활에선 일정 거리를 두면서도 친밀함은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오주환 권중혁 이상헌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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