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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27살 신예의 발칙한 소설




27살 괴물 신인 작가(사진)가 나타났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권태와 불안, 그 일그러진 초상을 ‘가족소설’의 액자 안에 그려 넣었다. 수식어 배제, 명사로 끝나는 어미가 주는 문장의 싱싱함이 소설 전반을 흐르는 권태와 불행감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첫 장편 데뷔작은 이렇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공기 도미노’는 각기 다른 주인공을 내세운 6개의 이야기들이 도미노가 파열음을 내며 쓰러지면서 맞물리는 가운데 완성되는 장편이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춰지고 드러난다. 비극의 도미노가 보여주는 파편화된 개인의 비극은 여섯 개의 색깔로 서서히 나타난다. 흥미로운 형식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매사에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인 30대 초반 여성 연주. 그녀는 카페 사장이다. 할머니와 재혼할 예정인 할아버지를 모셔오기 위해 방문한 집에서 연주는 콩가루 집안의 전형을 목격한다. 바람피운 교수 남편 원균, 남편에 대한 반감을 손님 앞에서 드러내며 욕설하는 아내 소현, 그런 며느리를 손님 앞에서 손찌검하는 시아버지 현석.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카페 오너이자 팔자 좋은 원로 화가인 할머니 윤복주와 그녀의 부속품처럼 사는 연주와의 관계, 서로 겉돌고 있는 연주와 애인 병식과의 관계가 펼쳐진다. 이 커플의 관계가 금가는 과정을 목도하는 병식의 친구 태영이 이혼녀이자 무직인 여동생 진수와 함께 살면서 불화하는 이야기도 있다. 저마다의 가족 관계는 따스함이 증발해 삐걱거린다. 불화는 소설의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나간다.

“집 안에는 밀도 높은 우울이 가득했다. 오래 있으면 절로 몸에 밸 것 같은 신경질적인 불안이 떠올랐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가는 특유의 냉소적인 문장으로 쓸쓸하고 파괴적인 현대성을 실감나게 표현해 낸다. 하지만 도저히 치유의 해답이 없어 보이는 이 가족관계의 단절과 파괴에 속수무책으로 있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장. 작가는 가족의 외연 확장을 통해 문제 해결의 의지를 드러낸다.

연주가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로 죽고, 할머니는 실의와 충격에 빠진다. 새 남편이 된 할아버지 현석은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 비극으로부터 달아나고자 시도하며 낚시를 다니다가 끝내는 들쥐바이러스에 감염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연거푸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한 윤복주 할머니. 이제 세상과 단절돼 비극 속에서만 머물고자 한다. 그런 윤복주에게 손을 내미는 이가 소현이다. “그녀는 복자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계획이었다. 그것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문장의 뼈대를 지탱하고 싶었다.”

결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신예 작가의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작가는 연세대 국문과 출신으로 2014년 단편 ‘싱크홀’로 등단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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