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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차량들 구조 않고 유유히 지나쳤다


유치원생 11명이 불길에 휩싸인 통학버스 안에 갇혀 질식해 가고 있었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차량들은 터널 안에서 동영상을 찍으며 불타고 있는 버스를 유유히 지나쳤고, 그 사이 27분이란 짧은 시간에 3∼7세밖에 안된 유치원생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웨이하이 현지 공안 당국과 목격자 증언 등을 종합하면 9일 오전 9시쯤(현지시간) ‘웨이하이 중세한국국제학교’ 부설 유치원 통학버스는 빗길에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버스에는 웨이하이 시내 곳곳을 돌며 태운 유치원생 11명과 인솔교사 1명, 운전기사 1명이 타고 있었다. 버스 옆면에는 한글로 학교 이름이 표시돼 있었다. 학교는 웨이하이 경제기술개발구에 있다.

버스는 학교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는 환추이구 타오자쾅 터널을 지나면서 사고를 냈다. 터널에 진입한 뒤 300여m를 지날 때 앞서 가던 청소차를 들이받았다. 충돌에 의한 충격 탓인지, 아니면 차량 결함 때문인지 불분명하지만 버스 앞쪽 출입구 근처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출입구가 불길에 막히면서 유치원생들과 인솔교사, 운전기사 모두 버스에 갇혔다.

당시 지나가던 차량 운전자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불은 버스 출입구 쪽에서 거세게 오르고 있었다. 이미 아이들이나 인솔교사가 출입구로 접근해 문을 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주변의 차량들은 버스 옆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으나 누구도 차량을 멈추고 구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쓸 수 없는 사이에 불길은 점차 버스 전체로 번지면서 내부는 연기로 가득 찼다.

소방당국은 주변 차량 운전자의 신고를 받았지만, 출근 시간대여서 출동하는 데 10분 이상 걸렸다. 소방차는 현장에 도착해 사고 발생 27분 만에 불길을 완전히 잡았지만 아이들을 살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숨진 운전기사는 버스 중간 통로에서 발견됐다. 출입문이 막히자 다른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다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지나가던 차량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넸더라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영상을 보면 출입구 외에 반대편은 멀쩡한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에서 도구를 이용해 창문을 깨고 탈출구를 만들어줬다면 아이들을 구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국 매체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선 사고 당시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차들이 멈추지 않은 채 통과했고, 소방차들도 연기가 나는 터널입구에 멈춰서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칭다오 총영사관 관계자는 “출근 시간대에 터널 안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구조가 어려워 피해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화재로 숨진 이들의 시신이 크게 훼손되면서 신원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현지 공안이 사망 유치원생의 DNA 검사를 통한 신원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는 사고 차량에 탄 유치원생 11명 중 10명이 한국인이고, 1명은 중국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웨이하이시는 유치원생들의 국적이 한국 5명, 중국 6명이라고 밝혀 일부는 이중국적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숨진 아이들이 소속된 ‘웨이하이 중세한국국제학교’는 2006년 중국 교육부 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으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학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교생 550여명, 교사가 100여명으로 규모가 크고 한국부와 영미권 국제학부, 중국부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주재원 자녀뿐 아니라 한국에서 혼자 유학 온 학생들도 상당수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정신 아래 ‘섬기는 지도자’를 배출한다는 교육이념으로 설립됐으며 ‘중국에서 세계로’ 향하는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의미에서 학교 이름을 ‘중세’로 지었다.

다만 이 학교는 소유권이나 부채비율, 이사회 운영시스템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해 2년 가까이 한국 교육부의 ‘재외한국학교’ 인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칭다오 한국총영사관은 사고 발생 직후 공관 현장 대책반을 가동하고 총영사 등 8명이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웨이하이=맹경환 특파원,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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