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청년이 호스티스를 만났을 때



별들의 고향을 각색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포스터


이 시절 정부가 단행한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모습


70년대 초반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70년 7월 열린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모습




여기저기서 탄식과 야유와 실소가 터져 나온다. "뭣이여?" "헐! 말도 안 돼." 수업 시간에 자료로 보여준 한 영화의 장면들에 대한 여대 학생들의 반응이다.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이장호 감독의 1974년작 '별들의 고향'이다. 예컨대 이런 장면들. 영화 초반에 여주인공 경아가 첫사랑 영석의 우격다짐으로 여관에서 첫 섹스를 하기 직전 화장실 거울을 보며 이렇게 기도한다. "그이가 저를 버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영원히 저를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또 영화 말미에 경아는 남자 주인공 문오와 잠자리에 들면서 말한다. "여자란 건 참 이상하게두 남자에 의해서 잘잘못이 가려져요."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은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몇몇 장면과 등장인물을 제외하면 거의 소설 속 상황과 대사를 거의 그대로 반복한다. 영화에 대한 오늘날 학생들의 반응은 소설이라 해서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별들의 고향’은 여성(특히 성과 육체)에 관한 다양한 통념과 고정관념의 전시장 같은 소설이다. 결혼 전에 여자는 절대로 남자와 잠자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고정관념, 여자는 창녀 아니면 성녀(혹은 선교사 부인)라는 선입견, 연애하는 여자 따로 결혼하는 여자 따로 있다는 통념, 한 번 ‘남자 맛’을 알게 된 여자는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착각, 남자에게 여자는 트로피 아니면 하수구에 불과하다는 편견 등등. 그러나 지금의 시각에서 ‘여성 혐오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소설은, 문단의 총아였던 26세의 젊은 작가 최인호를 단박에 청년문화의 대표주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1970년대 최고 화제작이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의 이 천양지차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1972년 9월부터 1973년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1973년 단행본으로 나왔다. 출간 후 이 소설은 출판사상 처음으로 10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출판계가 술렁거릴 정도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듬해 작가의 고등학교 동기인 이장호는 데뷔작으로 이 소설을 영화화해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5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100만 관객 돌파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음을 떠올려보면 1974년에 50만 관객이 얼마만큼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그 화제의 중심에는 여자주인공 오경아가 있다. 작가에 따르면 신문연재 당시 전국의 술집 여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경아로 바꾸는 유행이 일고 남자들은 경아가 불쌍하다며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진풍경을 벌일 정도였다. 그만큼 경아는 1970년대 대중들에게 당대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깊이 각인된 존재다. 그러나 ‘별들의 고향’은 인기를 얻은 만큼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인호는 당대 문화를 주도했던 젊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지만 한국문단과 지식인 계층이 주도한 청년담론 안에서는 “상업주의 작가” “호스티스 작가”로 폄하되었다. 그런 양 극단의 평가는 ‘별들의 고향’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청년’에 대한 상반된 이해와 해석이 있었다.

1970년대는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검열과 억압의 독재 시대이자, 동시에 경부고속도로 개통, 텔레비전과 아파트의 대중화로 상징되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대였다. 그 과정에서 영미와 유럽 국가의 대중적이면서 선진적인 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되었다. 청바지, 통기타, 장발, 고고춤, 생맥주 등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의 소비적인 청년문화는 이런 후진 정치와 선진 문화가 어색하게 공존하는 절음발이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기성세대에게는 유치하고 향락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새로운 문화의 향유는 당대 젊은이들에게는 정치적 구호를 대신하는 문화적 저항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1970년대 청년문화는 소비문화인 동시에 저항문화였다. ‘별들의 고향’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이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영화에서는 작품의 청년문화적 성격이 좀 더 두드러진다.) 최인호는 ‘청년문화 선언’(1974)을 통해 스스로를 청년문화의 대표주자로 내세웠다. 이 소설이 ‘호스티스 소설’인 동시에 ‘청년문학’일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그렇게 호스티스는 청년과 만난다.

호스티스와 만난 청년은 누구인가? ‘별들의 고향’의 화자인 남자주인공 김문오다. ‘나’(문오)는 미대를 졸업했지만 창작욕을 상실한 화가로 시골의 부모에게 받는 생활비에 의존해 혼자 사는 서른 살의 백수다. ‘나’는 스스로를 “무능력자”라고 부를 만큼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 매일 술을 마시며 권태와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 한마디로 ‘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물이다. 경아도 마찬가지다. 경아는 ‘키 155cm 미만, 가슴둘레 78cm, 몸무게 44kg’의 어린아이 같은 몸을 가진, 밝고 낙천적이고 천진하고 귀여운 여성이다. 실제로 소설에서 경아는 ‘나이만 먹은 애기’ ‘철부지’ ‘어린애’ 등과 같은 별명으로 불린다. ‘나’는 경아에게 말한다. “우린 피차 어린애같은 사람들이야. 그래서 난 네가 좋아.” 그들은 모두 “나이만 먹고 키가 큰 미성년자”이며 현실적인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미성숙한(혹은 성숙을 거부하는) 존재다.

그들은 그렇게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포즈를 취한다. 왜 그런가? 실패, 특히 (첫)사랑의 실패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렇다. 먼저 ‘나’의 실패담. ‘나’가 철들고 사귄 유일한 여성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약대생(졸업 후엔 약사) 혜정이다. 혜정은 ‘나’와 사귈 때 단 한 번의 키스도 허락하지 않은, 성관계가 불가능한 “선교사 부인”이다. 심지어 그녀는 ‘나’가 군대 간 사이에 좀 더 현실적이고 생활력 있는 남자와 약혼한 “깍정이”이기도 하다. 혜정은 한국사회에서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혜정을 옆방에 둔 채 자위하는 ‘나’의 모습은, 사랑하는 여자를 성적 경제적으로 만족시켜줄 수 없는 남자의 좌절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의 유아기적 퇴행은 바로 이 실패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변명이다. ‘내가 그림을 못 그리고 여자를 못 사귀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어린아이의 위치에 놓을 때라야 비로소 ‘나’는 자신의 진짜 무능력을 감출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경아는 어떤가? ‘나’의 실패가 불가능한 성관계 때문이라면, 경아의 실패는 그와 반대로 ‘너무’ 가능한 성관계 때문이다. 첫사랑 영석을 만나기 전까지 경아는 적은 월급이나마 적금을 부으며 착실하게 생활한 어른스러운 여성이었다. 그러나 첫사랑 영석과의 혼전 성관계와 낙태수술을 겪으면서 경아의 육체는 훼손되고 성적 대상으로서 그녀의 매력 또한 상실된다. 경아의 몸에는 그녀가 이미 성적 육체적으로 훼손됐다는 흔적, 즉 소파수술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경아는 가부장제 가족 질서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울타리 바깥의 여자가 된다. 경아의 어린아이다움은 바로 이러한 성적 육체적 훼손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자기위장이다. 자신의 (성적) 능력 감추기. 그렇게 스스로를 어떤 성적 경험도 없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상상함으로써 비로소 경아는 훼손이전으로 돌아가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자기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순진함을 연기하면 할수록 경아는 점점 더 망가지고 그럴수록 훼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사무직 여성에서 번화가의 호스티스로, 변두리 선술집의 작부로, 급기야 밤거리의 싸구려 창녀로 전락하는 서사적 과정은 그녀가 점점 더 뚱뚱하고 못생겨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더 이상 어린아이를 연기할 수 없는 울타리 바깥의 여성은 결국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제거된다. 여성에게 순결과 성적 개방 모두를 요구했던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숙한 어른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도 될 수 없었던 경아는 결국 ‘나’에게 청춘의 회한만을 남긴 채 소멸된다. 그런 점에서 ‘별들의 고향’의 원래 제목이 ‘별들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렇게 소멸된 경아는 한때 그녀와 어울렸던 남자들에게 우수 어린 멜랑콜리를 안겨준다.

경아와의 기억은 내 가슴에 숨겨져 있는, 끊임없이 과거에 미련을 갖고자 하는 꿈과 같은 환상일 뿐이었다. 거리에, 술잔에 숨어 있는 경아의 그림자는 그저 막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나의 퇴색된 청춘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다.

‘나’는 경아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안에 있던 젊은 날의 “슬픔, 절망감, 헛된 욕망, 우울함”을 떨쳐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생활력을 갖춘 성인의 세계에 입문한다. 남성의 성장을 위해 여성은 그렇게 소비되고 버려진다. ‘별들의 고향’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개발독재 시대의 도시에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던 남성이 호스티스 여성을 거치면서 훼손된 자기 세계를 복구하고 자기 주체성을 확립해가는 전형적인 남성 성장소설이다.

■'바보들의 행진' '상도' 등 빅히트작 수두룩… 대중소설계의 거목

최인호(1945∼2013)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벽구멍으로'라는 단편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했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재학 시절인 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72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별들의 고향'이 메가톤급 히트를 친 이후 청년문학 작품들인 '내 마음의 풍차' '바보들의 행진' '불새' 등이 연이어 성공하며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 됐다. 70년대뿐만 아니라 80년대('적도의 꽃'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등) 90년대('상도' 등)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상도'는 출간됐던 그 해에만 300만부가 팔렸을 정도다. 작가 이문열이 "내가 등단할 무렵(1970년대 후반) 소설가 중에서 부업 없이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작가는 최인호 선배 정도였던 것 같다"고 회고할 정도로 최인호의 대중적 위상은 매우 높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소설은 문단의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장편소설 뿐 아니라 중단편 소설도 많이 써 '술꾼' '타인의 방' '돌의 초상' '안녕하세요 하나님' '깊고 푸른 밤' 등을 썼다. 그 가운데 '타인의 방'으로 현대문학상(1972)을,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1982)을 수상했다. 사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