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투표와 당선, 그리고 그 너머를 생각할 때




제19대 대통령 선거도 끝자락이다. 대통령 파면이 빚은 초유의 ‘돌발대선’인데도 투표만큼은 마치 봄꽃잔치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난달 25∼30일 벌어진 재외국민투표를 비롯해 4∼5일 사전투표를 통해 유권자 4명 중 1명은 이미 투표를 마쳤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마침내 내일 공식투표일을 맞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일 등장할 당선자와 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산적한 국내외 문제군(群)에 직면할 테니 말이다. 지난 반년 동안은 사실상 국정 공백 상황이었지만 새 정부는 내각 구성도 못한 채 그야말로 개문발차(開門發車)의 처지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컸으니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높을 것이다. 다만 공약이나 정책이 작동되자면 물리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치열한 선거전 탓에 새 정부가 반대세력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얻어내기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래저래 당선자와 새 정부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이 크다.

지난 한 주일 내내 투표 열기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재확인했다. 다만 승자의 저주 가능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상황과 대응 능력은 크게 걱정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82)의 ‘화살과 노래’를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과 성찰에 대한 시인의 외침이었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지/ 너무 빨리 날아가서/ 눈으로는 그 화살을 따라갈 수 없었네//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불렀네/ 노래는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지/ 눈이 제아무리 예리하고 빠르다 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누가 따라갈 수 있으랴.”(‘화살과 노래’ 1·2연)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후보들을 찾아 화살을 쏘듯 투표를 했고 또 할 것이다. 하지만 화살이 다 과녁에 이를 수는 없다. 후보들도 갖은 공약 노래를 호소하듯 불렀다. 마찬가지로 그 노래가 유권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없을 터다. 더구나 그 진위는 지금 당장 확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쏘아올린 화살로 당선자는 결정될 테지만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그렇다고 바로 부러지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주장은 모두 귀하게 반영돼야 옳다. 이는 당선자의 당연한 책무일 뿐 아니라 준비기간 없이 출범하는 새 정부의 대통령이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자세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투표와 당선 이후, 그 너머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요건이다.

기다림과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택한 후보든 아니든 살이 시위를 떠난 뒤에는 기다리는 게 순리다. 당선자도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만을 바라보고 배제와 구분을 앞세우기보다 차분하게 그 너머를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옳다. 롱펠로의 시가 노래하는 것처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떡갈나무에서/ 부러지지 않고 박혀 있는 화살을 보았네/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알았네.”(3연)

2017년 돌발대선은 비록 한국 민주주의의 시련에서 출발했으나 그 끝은 촛불이 그랬던 것처럼 일부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승리로 마무리돼야 한다. 그래야 승자의 저주를 막을 수 있다. 당선자와 지지자는 물론이고 그를 반대했던 이들까지도 더불어 그 너머를 함께 바라볼 때 길은 비로소 열릴 것이다.

롱펠로는 기다림 속에 오래된 미래가 있었노라고 담담하게 밝혔다. 사실 모든 건 우리에게 달렸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된 미래처럼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마치 보기를 원하는 이에게만 미래가 허락된 것처럼. 조바심은 내려놓고 투표부터 마저 하자.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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