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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범죄] 슬픈 어린이날… ‘가난 절벽’에 버려지는 생명들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희은(가명·당시 27)씨는 환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희은씨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남편 오성택(가명·당시 35)씨와 함께 간호사의 눈을 피해 입원실을 빠져나왔다. 원무과에 입원비 등도 결제하지 못한 상황. 희은씨 부부가 걸음을 서둘러 빠져나온 병원에는 며칠 전 낳은 아들 동수(가명)가 남겨져 있었다.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가난은 희은씨 부부의 삶을 끈덕지게 따라다녔다. 2007년 혼인신고를 한 이후 2008년 3월과 2011년 5월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았다. 부부는 거처할 곳도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갓 태어난 아기 두 명을 보육시설에 맡겼다.

그런 상황에서 2013년 4월 동수가 태어났다. 희은씨 부부에게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가중(加重)이었다. 병원에서 동수를 데리고 나오려면 입원비와 제왕절개수술비 193만원을 내야 했다. 게다가 동수는 백내장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희은씨 부부는 동수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두고 오기로 결심했다.

동수를 버린 뒤에도 궁핍한 생활은 이어졌다. 희은씨는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에서 만난 남자에게 20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잡혔다. 경찰 조사를 받는 중에 동수를 두고 온 사실도 들켰다.

아기를 버린 부모는 10명 중 8명꼴로 가난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가 2011∼2016년 선고된 영아유기(치사 포함) 1심 판결문 69건과 이 기간 보도된 영아유기 기사 72건을 분석한 결과다. 판결문과 보도기사로 확인한 전체 141개 사건 중 영아유기 이유가 언급된 것은 118건이었다. ‘돈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서’ 등 경제적 어려움이 아기를 버린 이유로 명시된 것이 74건(62.7%)이다. 여기에 부모가 대학생이거나 미성년, 미혼 부모여서 양육할 능력 안 된다고 분류된 것도 27건(22.8%)이다. 두 가지 이유가 중복된 게 6건이었다. 118건 중 95건(80.5%)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양육할 능력이 안돼 아이를 버린 사건이었다.

그 외엔 ‘남편이 없음(수감 중 등)’이 14건, ‘부모와 가족에게 알려질 것을 우려해서’가 10건이었다. 다음은 ‘아이 아버지를 모름’과 ‘아이가 아픔’이 각각 5건, ‘불륜’이 3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가난의 다른 얼굴

영아유기 사건에는 보통 아기를 버린 부모를 향해 ‘비정(非情)한 부모’라는 비난이 따른다. 하지만 적어도 판결문과 보도기사에 따르면 부모가 아기를 버리는 것은 대부분 비정해서가 아니라 가난이나 양육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

경북 구미에 사는 A씨는 2011년 5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집 앞에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을 버렸다. 자신은 물론이고 동거하던 남자친구도 일정한 직업이 없어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이듬해 4월엔 동네 마트에서 식료품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는데, 그때는 다시 임신한 지 7개월째였다. A씨가 마트에서 훔친 물건은 삼겹살 상추 깻잎 고추와 유아면봉 딸기우유 ‘공주블링블링스티커북’. 9만2900원어치였다.

영아유기 피고인에게 법원이 대부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내리는 주된 이유도 부모의 가난 때문. A씨를 재판했던 판사는 “영아를 출산하고 두 달여간 양육했으나 경제적 곤궁으로 더 이상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사법적 관용보다 절실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미혼모 등이 받는 경제적 지원은 액수가 적고 수급 조건도 까다롭다”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영아유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우선 생계를 안정시켜주고 아기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주거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는 개인의 문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영아는 국가가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성민 이가현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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