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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일본인이 기록한 남북 위안부 할머니 20명의 증언 담아




일본의 포토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65)가 30년 넘게 일제강점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취재해 펴낸 신간이다. 들머리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는 취재 의욕을 순간 잃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취재는 없었다’….

독자들도 이 책을 마주하면 금세 저 말의 의미를 되새길 것이다.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니까, 이처럼 정신적으로 힘든 ‘독서’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취재의 시작은 1991년 10월 21일, 대한민국 최초로 성노예 피해 사실을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를 만나면서였다. 저자는 이때부터 남한 북한 중국 필리핀 등지를 돌며 90명 넘는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취재를 계속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중대한 국가 범죄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계속 진보해왔다. 하지만 근대 일본은 이러한 보편적 진리를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

책에는 20명의 증언이 담겼다. 쉽게 접하기 힘든 북한 피해 여성의 증언도 11건이나 된다. 일본 군인이나 경찰에 붙잡혀, 혹은 좋은 곳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꼬드김에 속아 끌려간 여성들이다.

기구하면서도 참혹한 스토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심미자(1924∼2008)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그는 자수(刺繡)를 잘하는 소녀였다. 중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 부탁으로 나팔꽃으로 수놓은 일본 지도를 제출했는데, 어느 날 학교를 찾은 일본 경찰관이 윽박을 질렀다. “왜 벚꽃이 아니라 나팔꽃이냐, 일본의 국화가 무엇인지 아느냐.”

할머니는 고문을 당한 뒤 일본 후쿠오카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장병들은 그를 ‘7번’이라고 불렀다. 매독 치료제인 ‘606호’ 주사를 맞으면서, 아침이면 소금으로 음부를 씻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열여섯 살 어린 소녀의 청춘, 꿈, 바람이 산산이 조각나버렸습니다.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쁘지 내가 나쁜 것이 아니잖아요.”

말미에는 저자가 피해 여성과 함께 고향을 찾아가거나, 세상과 이별한 할머니의 빈소를 찾는 르포르타주 4편도 실려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잊지 말자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해 있는 할머니는 38명밖에 안 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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