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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反친일 우파 학병세대가 실질적 설계자”



대한민국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상해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아 수립된 나라다. 광복 이후 박헌영이 이끄는 남로당 계열을 제외한 중도·우익 진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한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부제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만들고 설계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인 대전대 국문과 김건우(49) 교수는 20년 가까운 연구를 통해 ‘친일 하지 않은 우익’이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병세대는 그 중심이다.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백낙준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다.

저자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우익’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사상적 선배인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 등과 후배 천관우 이기백 등도 각자의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17∼23년에 태어나 일제시대 최고 교육을 받은 이들은 이승만 등 선배 세대와 달리 친일 의혹이 없었고, 대부분 북한 출신으로 남한을 선택한 까닭에 색깔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지금까지 우파의 정체성은 남북대결의 틈바구니에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친일세력이 사실상 독점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우파의 전부는 아니다. 1960∼70년대 집권세력과 이들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 모두 이념적으론 하나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는 모두 좌파이고, 보수는 다 우파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저자는 ‘진보 우익’이 존재했고, 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조국의 근대화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이들이 꿈꾼 대한민국은 정치적 근대화로서의 민주화, 경제적 근대화로서의 산업화, 문화적 근대화로서의 새 문화 창조였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4·19혁명과 5·16쿠데타 이후 정치 현실에 참여하기도 하고 박정희 정권과 뜻을 같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일적 뿌리에 대해서는 생리적 반감을 품었다.

학병세대 대부분이 일본에서 유학해 정신적, 기술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다. 저자가 한국의 ‘정통 우익’이라고 꼽은 김준엽 조차 근대 일본의 초석을 다진 후쿠자와 유키치의 삶에 깊이 감명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친일과는 별개의 문제다. 1960년대 박정희의 대척점에 선 장준하와 김준엽 등 ‘사상계’ 그룹은 우익 민족주의 계열이었다. 두 사람은 광복군의 적통이자 공산주의자들과 대립했던 임시정부 우익 민족주의의 적자였다. 그럼에도 친일세력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우익을 독점하려 했다.

“해방 후 한국의 역사에서 좌익이 정권을 잡은 적은 없다. 중도노선 정당조차 살아남은 적이 없다. 우익과 보수를 가장한 극우 정치세력과 그냥 우익들 간의 이합집산과 대립의 정치사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와 정책을 말하면서 보수 우익 일부에서 틀 지은 좌우 프레임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념의 스펙트럼은 넓고, 우익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들 입장과 같은 극우적 국가주의가 아니면 모두 좌파로 내모는 건 우익이 아니라 우익을 사칭하는 것이라고. 19대 대통령선거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아직 누구를 찍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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