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살며 사랑하며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우리는 괜찮지 않다
며칠 전 SNS에서 충격적인 포스팅을 봤다. 한 대형마트의 잡화판매대에서 성인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코스튬을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작성자의 포스팅 속에는 민망한 코스튬 차림의 여성들 사진이 즐비했다. 문제의 대형마트는 최근 본가 근처에 개장해서 아이들을 동반한 동생 부부가 이미 방문한 적 있는 곳이었다. 정말이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즉시 대형마트의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본사 고객센터에 불만사항을 접수한 뒤 지점 고객센터로도 연락했다. 지점 고객센터에서는 잡화판매대를 관리하는 사...
입력:2019-01-18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내 고통으로 돕는 자조모임
자조모임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끼리 돕는 집단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1935년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이었다. 의료진이나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지만, 아무리 내담자를 이해하려 해도 똑같은 고통을 겪어 본 건 아니다. 그래서 환우와 그 가족들이 어려움을 공유해 재발을 예방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조모임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알코올중독자뿐 아니라 도박중독자(단도박모임), 성폭력피해자, 발달장애인, 자살유가족 등 여러 자조모임이 있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
입력:2019-01-16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시를 위한 변명
시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나 현상을 접할 때마다 나는 공룡이 떠오른다. 생각해보자. 먼 숲이나 바다에 공룡이 살고 있어서 여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한다면, 주말마다 공룡의 발자국을 찾아 나서고 그들의 뼈를 일으키기 위해 박물관을 짓고, 집집마다 실리콘으로 만든 모형을 두고 아이들은 그 이름을 달달 외웠을까. 비록 멸망하지 않았으나 시는 지긋지긋한 관계가 끝나버린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사랑 같은 데가 있다. 저기 먼 곳에서 온전히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어쩌면 죽은 채로 미래가 되어버린 것. 읽고 쓰는 일조차 영원히 지속되는 추모의 절차로 삼으면...
입력:2019-01-14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프레임 바깥의 당신
틈나는 대로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부모님 사진을 중심으로 앨범을 몇 권 만들어 볼 생각에서다. 그러자면 블로그와 카페, 클라우드 등 온라인상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선별해 한곳에 모으는 일부터 해야 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휴대폰 카메라로 옮겨오는 동안 쌓인 사진은 대충 헤아려 봐도 2만여장이나 되었다. 필름값과 인화비용에서 벗어났다고 고민 없이 셔터를 눌러댄 탓이었다. 그동안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시작으로 지금의 SNS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고 사진을 업데이트했다.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클라우드와 동기화해 저장하는 것도 잊...
입력:2019-01-11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백번을 환자 자리에 앉더라도
7년간 같은 병원에 있었고 25편의 논문을 함께 쓴 교수님이 헌신하고 열정을 쏟던 장소에서 황망하게 세상을 뜨신지 이제 열흘이 되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과정을 들으며, 열 군데 칼을 맞은 스승의 굳어가는 얼굴을 보며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던 레지던트 후배를 보며, 예전과는 달리 어떤 평범하지 않은 세계로 건너간 듯한 은사님들의 표정을 보며, 각자의 삶에 애써 묻어 놨던 예전 트라우마들까지 한꺼번에 살아나는 참 힘든 한 주였다.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와는 다른 분노와 죄책감, 안타까움, 걱정이 몰려왔다. 내원하는 환자분들은 오히...
입력:2019-01-09 04:05:02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삶은 그렇게 특별해진다
왜 인간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입에 넣은 사탕이 다 녹기도 전에 둘로 쪼개져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날은 누군가와 결별할 것 같았고 위태롭던 사랑이 끝날 것 같았다. 쪼개진 사탕을 억지로 붙여놓으려고 했을 때 느꼈던 한 뭉텅이 반죽 같던 혀의 우둔함. 나는 그날의 불행을 모두 사탕 탓으로 돌렸다. 그때 사탕은 사탕을 넘어서 일순간 전능해졌던 것이다. ‘의미’의 거처가 시시콜콜한 개인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도 그렇다. 농사가 중요했던 시대야 적절한 때 씨를 뿌리고 거두기 위해 절기와 명절이 필요했다지만, 지금이야 그 상징...
입력:2019-01-07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당신 없이 맞는 새해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빠가 안 계시는 아빠 집에 가족들이 모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마련해 간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다. 아이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케이크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원을 빌고 촛불을 불어 끌 수 있도록, 촛불에 불을 붙이고 뒤죽박죽인 축하 노래 부르길 반복했다. 촛불 끄기가 다 끝나자 아이들은 각자 숟가락을 들고 아이스크림케이크에 달려들었다. 다른 때와 달리 아무런 제재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은 왁자지껄 즐거워했고, 그런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도 ...
입력:2019-01-04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평범한 사람의 지독한 불운
평범한 사람의 지독한 불운에 대해.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봐도 인생에 대한 의문이 커질 뿐이다. 어렸을 적 읽던 동화에서는 착하고 열심히 살면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우리가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거짓말이었다. 순한 사슴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의 과학책이 더 진실되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결국 신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 질문이었다. 이런 답 없는 질문에 대해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교수님을 2018년 마지막 날에 진료하다 환자의 칼에 찔려 돌아가신 정신과 의사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
입력:2019-01-02 04:05: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하루가 지나갈 뿐이지만
2018년이 딱 하루 남았다. 오늘과 내일, 하루 동안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나는 이런 쓸모없는 질문에 종종 붙들린다. 가령 2018년 23시 59분 59초와 2019년 00시 00분 사이, 단 1초 사이에 벌어지는 일 같은 데 말이다. 도대체 그 1초에게는 무엇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달력을 바꾸고, 누군가의 생몰연대를 달라지게 하며, 한 사건의 범법과 합법까지 갈라놓는 것일까.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도량형 총회에서 세슘원자시계를 국제표준시계로 채택하면서 세계는 공통된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전과 공전 주기로 결정되는 천문시와 진자운동...
입력:2018-12-31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가벼운 다짐
지난 일기장을 정리했다. 연말이면 으레 하는 연례행사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물론 내게도 일기장을 정리하며 지난해를 반성하고 다가올 해를 계획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러지 않는다. 무엇 하러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반복하며 스스로 의지박약함을 탓하겠나. 그깟 다이어트에 실패한다고, 책 좀 덜 읽는다고, 장편 탈고를 미룬다고, 저축 좀 못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목표는 크고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드높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며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인생이라는 말은 수...
입력:2018-12-28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오랜만에 무슨 말을
자주 만나는 사람과 할 말이 많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할 말이 적다고들 한다. 한때는 매일 밥을 같이 먹고 비밀 없던 친구들이었는데 예전처럼 한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닌데다 각자 바쁘다 보니 훌쩍 십 년이 흘러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시절 서로에게 갖던 이미지와 현재는 많이 달랐다. 세상 욕심 많던 친구가 세상사에 너그러워진 모습도, 자신감 있던 친구가 조심스러워진 모습도 낯설었다. 옛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은 까닭은 꼭 불행해서가 아니라 옛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딸려 나오는 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 지금...
입력:2018-12-26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인간을 위한 최소한
서부발전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끔찍한 뉴스는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간신히 내게 깃든 평온이 나와 무관한 것들로 흔들리는 게 싫은 마음. 이 마음은 잘못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나의 무심함이 누군가의 비극이 되고 또 그 비극이 나의 현실이 되는 일은, 설령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발전’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저버렸던 ‘인간다움’이 비극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삼 이상한 것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국민총생산도 높아졌다는 뉴스다. 일자리 환경...
입력:2018-12-24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우리를 집어삼킨 구멍
7년 전 어느 봄밤, 사고가 닥쳤다. 생사를 장담하기 힘든 고비는 넘겼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을 허락하지 않는 통증과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머리맡에 죽음을 부려놓고 잠들곤 했다. 그러는 동안 나만 괴로웠던 것도 아니다. 나를 위해 어떤 순간에도 약해질 수 없었던 부모님과 엉망으로 부러져버린 누이의 미래와 마주해야 했던 동생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다. 육친과도 같았던 친구들 역시 나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내가 지고 있는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서 지려 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고통을 나눈다고 고통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
입력:2018-12-21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사회관계망의 선순환
블로그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는데, 개원할 때부터 의원 이름으로 시작했으니 상업적인 블로그이다. 상업적이라고 과장광고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환자나 가족 입장에서는 검색해서 궁금했던 정보를 얻고, 나는 내 의원 이름을 알리면 괜찮겠다 싶었다. 독후감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 글을 올리며 지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였는데 그로 인해 삶이 꽤 바뀌었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서 공모전 응모나 출판계획서를 냈고, 내는 족족 탈락했는데, 막상 블로그를 통해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지금 여기 글을 쓰는 것도 연락이 끊겼...
입력:2018-12-19 04:05:02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미래가 생성되는 시간
연말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오남매 중 나를 제외한 모두가 결혼한 데다 조카까지 두셋씩 두었으니 스무 명가량 되는 대식구였다. 하지만 경상도 집안의 무뚝뚝함은 인원수와 상관없는 것.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간혹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다감하고 자상한 둘째 형이 있었다. 둘째 형은 서먹한 침묵을 화목한 대화로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하나하나 건강과 사업과 주변에 대해 차례차례 묻다가 마지막 차례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에게 물을 말은 뻔했다. 문학이 가진 안팎의 어려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후 근황을 묻는 것...
입력:2018-12-17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젊음을 탕진할 권리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선천적인 재능에 후천적인 노력을 더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이든 잘해서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엄친아들은 엄마의 잔소리 속에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마치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보았다는 이는 없는 전설 속의 동물, 유니콘이나 용처럼 말이다. 요즘도 엄친아라는 말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을 뭐라 지칭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어느 한 시절의 내게 그랬듯 누군가를 끝없이 주눅 들게 하고 ...
입력:2018-12-14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취미가 몇 개입니까
취미를 물으면 어린 시절부터 늘 대답은 같았다. 독서와 글쓰기. 어느 시절에는 시만 읽다가 또 다른 시절에는 과학 소설이나 에세이에 빠졌다. 애들이 좀 자라서 전보다 시간이 나자 작년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도 생활의 활력이 되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 책을 사랑하다 보면 책도 마치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나 보다. 몇 달 전부터 바쁜 일상에 책을 읽지 못하고 잠들게 되면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늘 하는 일인 진료나 집안일이 바쁠 때도 있고 그 안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안 읽으면 뭔가 제대로 살지 않은 것만 같았다. 순수한 열정...
입력:2018-12-12 04:05: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내가 누군지 알아?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정치 뉴스에 회자된 적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한 정당이 인재 영입 슬로건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슬로건은 시 중반에 나오는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구절과 맞물려 정치의 계절에 유요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또한 저 시는 청년의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인용되었는데, 시대의 상처와 마음의 위태로움을 다루는 드라마는 다음 구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중략)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
입력:2018-12-10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쓸모없이 반짝이는
네다섯 평쯤 되는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엄마, 동생, 그리고 나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아빠는 열사의 나라에서 덤프트럭을 몰았다. 방이 좁아선지 크리스마스트리는 가져보지 못했다. 하지만 산타클로스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매해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칸 공책 한 묶음과 연필 한 다스였다. 그다음 해엔 기관차 모양의 연필깎이를 선물 받았다.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스러웠다. 그 선물을 놓아둔 게 산타클로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마론 인형 대신 공책이나 연필...
입력:2018-12-07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부모의 행복이 출산장려
내년부터 250만원의 출산장려금이 지급된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다 해도 어머니 세대와 비교하자면 요즘 육아는 어쨌든 쉬워졌다. 무료 필수 예방접종, 영유아 검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지원금을 비롯해 다자녀에 대한 할인과 같이 예전에 없던 혜택이 생겼으니까. 그런 혜택을 늘린다고 여전히 아이를 더 많이 낳지는 않는다. 자녀가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또는 결혼을 하고도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만 기른다며 우울하고 잠이 안 온다는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많이 찾아온다. 막상 그분들의 자녀에 해당하는 30~40대인 본인이 결혼 못한다고 ...
입력:2018-12-05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꿈과 사랑이 가능한 시간
나는 종교가 없다. 호기심 많은 이들의 성장기가 대개 그렇듯 예배당이나 포교당 같은 곳에 다닌 적이 있지만 ‘믿음’을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스로 당혹스러운 것은 그렇다고 무신론자라고도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자주 신을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나에게 찾아온 알 수 없는 일들이 숨겨놓은 필연성을 따져보곤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일의 전후가 가진 인과성보다는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흐름 속에 던져져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때로는 무의식을 ...
입력:2018-12-03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모두를 구하는 그물
누구나 갑자기 닥치는 사고나 재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끔, 예기치 못한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보곤 한다. 현재 나는 아파트 5층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재난 시엔 승강기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베란다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지만, 혼자 있을 땐 그 역시 무용지물이다. 결국 자력으로는 대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볕이 잘 들고, 휠체어 생활이 가능하며, 제대로 된 응급실을 갖춘 병원과 가까운 아파트 1층으로 이사해야 할까. 그런 집이 가난한 날 두 팔 ...
입력:2018-11-30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아날로그의 낭만
첫눈 오는 토요일 진료를 보고 마지막으로 저장을 누르는데 그 순간 멈추었다. 전에도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인터넷이 끊긴 경험이 있었던 기계치로서, 컴퓨터가 안 될 때 가장 효과 있었던 선 다시 꽂기와 껐다 켜기를 했다. 유선전화와 휴대폰으로 관리소와 통신사에 모두 전화를 했으나 신호 대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응답뿐이었다. 화재 때문이라는 원인을 알게 되었고, 휴대폰 통신사는 달라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그 시각 이후 온 분들은 차트와 처방전을 종이에 써서 진료했다. 손글씨를 쓰니 마치 편지 쓰는 것 같았고, 모니터에 ...
입력:2018-11-28 04:05: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하얀색이 하는 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사전에 일정한 양의 공부를 필요로 한다. 어떤 공부는 그 일의 전사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고 어떤 공부는 행위와 인식을 알맞게 숙련하는 것이다. 대개는 비중을 달리하며 이 두 가지를 함께해야 하는데, 시도 마찬가지여서 공부가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다 쓰는 이 공부는 끝이 없어서 아무리 오래 시를 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공부를 멈추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투성’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삶 저편에는 늘 알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어서, 시인은 언제나 모르는 채로 그 미지에 대해 말하는 중이...
입력:2018-11-26 04:05:02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브런치 카페에 가고 싶다
며칠 전 SNS에 ‘브런치 카페에 가고 싶다’는 짧은 문장을 게시했다. 고맙게도 몇몇 친구들이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브런치 카페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어떤 시간과 공간 속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이 꼭 브런치 카페여야만 할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간혹 ‘다시 걷고 싶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 역시 단순한 보행의 의미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뜻일 때가 더 많았다. 요즘 난 SNS를 통해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그들이 누구를 만나 ...
입력:2018-11-23 04:05:01
1 2 3 4 5 6 7 8 9 10 >>